[김길원의 헬스노트] 심평원 '진료비 삭감', 경쟁병원장이 심사위원?

입력 2018-10-18 06:13  

[김길원의 헬스노트] 심평원 '진료비 삭감', 경쟁병원장이 심사위원?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수년간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해온 김모(57)씨는 지난 4월 대학병원에서 절골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은 후 동생의 소개로 인근 관절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았다. 절골술은 어긋난 관절뼈를 정렬해주는 수술이다. 무릎 관절 안쪽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킴으로써 통증 감소와 관절의 수명 연장을 도모한다. 이 수술로 통증이 줄어든 김씨는 퇴원 때 병원 의료진에게 감사의 편지까지 전할 정도로 만족해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환자가 만족해하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씨가 퇴원하고 나서 치료비를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이후 이 병원은 시쳇말로 '멘붕'이 됐다. 진료비 청구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전체 진료비 350만원 중 250만원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환자의 치료비를 국가가 부담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심평원은 그 이유로 절골술 수술을 판정할 때의 고시 기준이 휘어진 다리 각도가 5도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 환자는 각도가 5도 이하라고 지적했다. 과도한 수술로 판정한 것이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대학병원에서조차 6도 이상 휘어있어 절골술이 필요하다고 했고, 절골술을 하는 정형외과 의사라면 누가 봐도 명백히 6도 이상 휘어진 다리를 수술해 환자가 만족해하는데도 심평원이 이렇게 나오는 건 명백한 '갑질'에 해당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여기서 심평원의 진료비 심사체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체계는 환자의 진료비 대부분을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대신 지급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총 진료비 1만원 중 환자가 1천원만 냈다면 나머지 9천원은 국가가 내주는 셈이다.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이런 진료비 청구가 과도하거나 아예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병원이 일부러 환자에게 과도한 치료를 하고 나서 국가에 고액의 진료비를 청구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병원이 청구한 진료비를 심사하고 삭감하는 게 심평원의 기본 역할이다.
심평원은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진료 분야별 심사위원을 두고 있다. 이들 심사위원은 지역별로 배치돼 병원이 신청한 진료비 청구자료가 적정한지를 전문과목별로 심사한다. 사법기관으로 치면 경찰이나 검사의 역할이다.
그러나 일선 병원에서는 이들 심사위원의 자격과 운영에 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선 김씨 사례의 경우 진료비 식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심사위원이 인근 경쟁병원의 원장이어서 심사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게 해당 병원장의 주장이다.
이 병원 원장은 "평상시 관절 수술의 월 삭감액이 1천만원 이내인데, 지난 6월에는 무려 4천만원이나 돼 여러 경로로 확인해보니 경쟁 관절병원의 원장이 심사위원을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는 비슷한 규모의 개인병원 원장이 심사하면서 경쟁병원 죽이기를 한 것"이라고 분개했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심평원의 삭감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해도 다시 그 의사가 심사하기 때문에 결국 심판청구라는 3심까지 가서도 이기기 어렵고 심평원에 찍혀 보복당할 우려만 크다는 게 해당 원장의 주장이다.
혹시 해당 병원의 분풀이가 아닐까 해서 다른 관절병원도 취재해봤다. 모두 이런 주장에 동조했다.
한 병원장은 "한번은 심평원이 주최한 간담회에 갔는데 척추 전문의가 관절내시경 수술의 진료비 청구를 심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세부 분과 전문의조차 신기술을 따라잡기 힘든데, 하물며 해당 수술을 잘 모르는 다른 과목 전문의가 심사하고 삭감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또 다른 병원장은 심평원에서 삭감 성적이 좋으면 3년씩 연임을 시키기 때문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정년퇴임 교수 등이 7∼10년씩 한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의료계와 유착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평원 심사위원의 장기근속은 법원, 검찰, 경찰서, 세무서의 기관장이 1년 이상 근무하는 게 드문 것과 비교하면 특이한 상황"이라며 "균형을 잃은 불공정한 심사로 선의의 치료를 다 하는 의료기관에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끼치는 현 심평원의 심사체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할 적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심평원은 심사위원을 선발할 때 전문의 경력을 보지만, 정형외과라고 해서 반드시 정형외과만 보는 구조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경쟁병원을 평가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특정 병원 사례를 선택해서 심사하는 게 아니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물론 심평원이 부당한 보험 청구사례를 걸러내 건보재정을 지켜내는 건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려면 사법기관과 비슷한 권한도 필요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심사 내용 자체가 외부에 '깜깜이'가 돼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실수가 있을 수 있고, 한편으로는 조직 내 부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경우 최선의 방책은 심사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뿐이다. 의료계가 심평원의 개혁을 요구하며 들끓고 있는데도 모른 척하는 것은 '문재인 헬스케어'의 지향점도 아니다.
다행히 이런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으로 끊임없이 요구됐던 '심사실명제'가 이달부터 시행된다. 각 병원에 통보되는 심사결과통보서에 심사결정 참여 심사위원의 이름을 병기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아직은 상근 심사위원의 이름만 공개되고, 비상근 심사위원은 공개되지 않는 반쪽짜리다. 경쟁병원 원장이 비상근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불공정 논란이 있다고 해도 심사 대상 병원은 이를 알 수 없는 셈이다.
한 의사는 논란 많은 심평원의 진료비 심사를 AI(인공지능)에 맡기는 게 더 객관적일 것 같다고 푸념했다. 오죽하면 이런 푸념이 나올까, 심평원이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bi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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