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안 거쳐 라이트풋-레옹 시대 개막…예술의전당서 19~21일 공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저희는 공주나 왕자, 백조가 나오는 작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전 발레의 기본과 기술을 활용해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백조의 호수'를 출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떻게 동시대와 연결될 수 있느냐는 지점입니다."
'현대무용의 최전선'으로 통하는 네덜란드 댄스시어터1(이하 NDT1)의 폴 라이트풋 예술감독은 1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기자간담회에서 "고전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상임 안무가를 맡은 솔 레옹 예술고문 역시 "백조와 줄리엣 같은 수백전 전 인물을 그대로 표현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NDT1은 이 같은 신념 아래 60년째 발레와 현대무용을 아우르는 '춤 실험'을 이어온다.
발레 중심지로는 프랑스나 러시아가 쉽게 꼽히지만 현대발레사로 넘어오면서는 네덜란드가 추가된다. 그 이유는 오롯이 NDT1 때문이다. 그만큼 NDT1은 1959년 창단 이후 반항적이면서도 선구적인 작업으로 세계 현대무용계를 주도한다.
이들의 정체성은 결국 실험과 창조다.
라이트풋은 "전통이나 단체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늘 흘러왔고 일부러 새로운 걸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고민할 뿐입니다."
폴 역시 단체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보다는 세계 관객과의 소통 자체를 중요시한다고 설명했다. "과거엔 춤의 오락적 기능이 조금 더 부각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인간과 자연, 우리가 사는 세계를 춤에 진지하게 담아내려 노력합니다."
NDT1을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천재 안무가 이리 킬리안이다. 1970년대 중반 20대 나이로 예술감독에 부임한 그는 이 무용단에 지금과 같은 명성을 안겨줬다.
그는 이 단체를 25년간 이끌며 정확한 발레 테크닉과 자연스럽고 감각적인 현대무용을 조화한 안무 스타일을 구축했다. 뚜렷한 서사를 전개하진 않지만, 인간 감정에 직관적으로 호소하는 작품이 많다.
간결한 무대와 정제된 몸짓을 특징으로 하는 그에게는 '위대한 절제미', '세계 현대무용의 나침반'이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킬리안이 예술감독이던 시절 무용수 솔 레옹과 폴 라이트풋은 상주 안무가를 거쳐 킬리안이 은퇴한 2011년부터 단체를 함께 이끈다.
이들은 '킬리안 이후 NDT1' 명성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비결로 '협업'을 꼽았다. 이들은 "우리 둘은 음과 양, 흑과 백처럼 굉장히 다르지만 목표와 꿈이 같기 때문에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저희 협업이 관객을 매료시키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서 독백이 아니라 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죠. 관객은 하나의 관점만을 보는 게 아니라 둘의 시선이 얽혀나가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어느 시선이 어떻게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알 수 없기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레옹)
킬리안이 남긴 또 다른 주요한 유산은 발레단을 쪼개어 구성했다는 점이다. 즉, 킬리안은 재정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본래 단체를 모태로 하는 NDT1과 젊은 무용가들을 따로 모은 NDT2로 나눠 운영하는 행정력을 보였다. 한때 은퇴를 앞둔 베테랑 무용수들로 구성된 NDT3까지 운영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스템은 더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 국제무대에서의 더 활발한 유통을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중에서도 '원조' 격으로 통하는 NTD1이 오는 10월 19~2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6년 만의 내한 공연을 펼친다.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올해 무용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연 중 하나다. 예술의전당은 올해 NDT1이 예정하지 않은 아시아 투어를 직접 나서 꾸렸을 정도로 이번 공연 성사에 많은 공을 들였다.
전해웅 예술의전당 공연예술본부장은 "무용에 대해 잘 몰라도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감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NDT1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대표 레퍼토리부터 최신작까지를 다채롭게 선보인다.
우선 솔 레옹과 폴 라이트풋이 함께 안무한 '세이프 애즈 하우지즈(Safe as Houses·2001)'와 '스톱 모션(Stop Motion·2014)'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 호평받은 무용단 대표 레퍼토리다.
'세이프 애즈 하우지즈'는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역경'에서 영감받아 창작한 작품이다. 미니멀한 세트와 영상, 바흐 음악, 세련된 안무가 결합됐다.
'스톱 모션'은 이별과 변화를 주제로 막스 리히터의 슬픈 음악과 영상을 사용함으로써 비극적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작품이다.
레옹은 "우리 작품은 모두 시간과 공간, 변형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담는다"며 "이번 프로그램을 한국에 소개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상주안무가이자 NDT 협력안무가인 마르코 괴케가 안무한 '워크 더 데몬(Walk the Demon)도 선보인다. 지난달 말 네덜란드에서 초연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이번 예술의전당 공연이 아시아 초연이다.
라이트풋은 "우리 레퍼토리의 과거와 현재를 거쳐 막 탄생한 아기와 같은 작품까지 선보이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남기고픈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느끼고 싶은 대로 느껴라"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받아들여 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절대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춤은 기본적으로 느끼는 것(feeling)이니까요."(레옹) 4만~12만원. ☎02-580-1300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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