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실 엠블렘에 드골 상징하는 로렌 십자가 추가
프로필 사진에도 드골 전쟁회고록 배경에 넣는 등 '후광 효과' 노려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맞아 프랑스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샤를 드골의 후광에 기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파리 인류박물관에서 불평등 완화 정책을 발표할 당시 뒤 배경의 엘리제궁 로고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상징 문양이 하나 추가된 것이 눈에 띄었다.
도끼, 참나무 가지, 두 마리의 사자 머리, 프랑스 공화국을 의미하는 RF 글자 등으로 구성됐던 엘리제궁 엠블렘에는 가로 방향으로 두 개의 막대기가 있는 '로렌 십자가'가 중앙에 새로 추가됐다.
로렌 십자가는 독일과의 접경지역인 로렌 지방에서 중세부터 유래된 십자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샤를 드골 장군이 영국에서 이끌던 '자유 프랑스'의 상징물로 사용되면서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로렌 십자가는 지금도 보통 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대(對) 나치 항전과 드골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쓰인다. 드골의 자택과 묘역이 있는 콜롱베 레 되 제글리즈에는 드골을 기려 초대형 로렌 십자가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로렌 십자가를 프랑스 대통령의 로고에 추가한 것은 마크롱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엘리제궁은 로고 변경에 대해 "올해는 드골 대통령이 수립한 제5공화국 헌법 제정 60주년이자, 드골의 타계 50주년이며 또 내후년인 2020년은 런던에서 드골이 BBC를 통해 프랑스 내에 항전을 처음으로 촉구한 연설을 한 지 80년이 된다"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드골의 상징과도 같은 로렌 십자가를 엠블렘에 넣었다고 밝혔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들은 공식 엠블렘을 조금씩 취향에 맞게 변형하기는 했어도 새 상징물을 추가한 것은 마크롱이 처음이다.
마크롱이 드골과 동격으로 각인된 이 로렌 십자가를 대통령 상징물로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위기에 처한 마크롱이 여전히 거인으로 추앙받는 드골의 '후광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드골은 전후 프랑스를 재건하면서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를 확립하고 핵을 보유하는 한편, 유럽의 통합을 주도하면서 프랑스를 유럽의 초강대국 반열로 다시 올려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프랑스에서는 대체로 좌·우·중도 진영을 막론하고 국부로 추앙받으며, 보통 '장군'을 뜻하는 '제네랄'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마크롱은 작년 5월 집권 이후 쉬지 않고 개혁드라이브를 거는 과정에서 권위주의 리더십 논란, 개혁 피로감, 보좌관 스캔들, 주요 각료의 불화 등으로 국정 지지율이 집권 직후의 60% 중반대에서 최근 20% 중후반대로 급락했다.
마크롱이 드골의 상징을 정치에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는 작년 6월 공식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배경에 드골이 집필한 2차대전 회고록을 일부러 배치하기도 했다.
이달 초 그는 드골이 말년을 보내며 회고록을 집필했던 농촌마을 콜롱베 레 되 제글리즈를 방문해 샤를 드골의 묘지에 참배하고 제5공화국 헌법 제정 60주년 기념식을 직접 주재한 바 있다.
마크롱이 드골의 상징을 자주 이용하는 것에 대해 골리즘(드골주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공화당(중도우파) 인사들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는다.
공화당 원내대표 제오프루아 디디에 의원은 "마크롱이 골리즘을 독점하려고 하는데 어림도 없다"고 비난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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