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강진 한국민화뮤지엄

입력 2018-11-11 08:01  

[연합이매진] 강진 한국민화뮤지엄
百姓의 그림, 萬民의 그림을 만난다

(강진=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고려청자의 고장인 전남 강진에 '별종'이 들어섰다. 한국민화뮤지엄이다. 2000년 강원도 영월에서 국내 최초의 민화 전문 박물관으로 문을 연 조선민화박물관의 자매관으로, 2015년 강진 고려청자박물관 옆에 새로이 자리 잡았다. 두 박물관에서는 전체 4천500여 점의 유물 중 250여 점이 순환 전시되고 있다. 멀리 강진까지 달려갔다면 고려의 청자만 보기에도, 조선의 민화만 보기에도 아쉬울 터이니 같이 둘러보는 게 좋겠다.




'예전에, 실용을 목적으로 무명인이 그렸던 그림. 산수, 화조 따위의 정통 회화를 모방한 것으로 소박하고 파격적이며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

표준국어대사전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찾은 민화(民畵)의 정의다. 보통 민화라고 하면 주로 조선 후기의 속화(俗畵)를 이른다. 사대부가 그린 문인화 등과 구별해 일반 백성이 그리고 즐긴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민화'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하고 간결한 정의를 확립하지 못한 이유는 민화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이 일본의 사상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민간 미술'(folk art)이나 이를 차용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화' 개념이 오직 민중의 취향으로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향유되는 그림을 의미한다면, 조선의 민화는 왕실과 양반층에서 먼저 사랑받았고, 나중에 일반 서민 계층으로 확산해 모든 계층이 누린 그림이라고 함현국 한국민화뮤지엄 홍보실장은 설명했다. 나쁜 일을 막고 복을 기원하며,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을 솔직하고 소박하게 그려내고 모두가 즐겼으나 누가 그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그림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민화'만큼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 처용상에서 시작된 민화

상설 전시는 민화의 역사와 흐름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종이나 비단에 그린 그림으로 한정할 때 민화의 기원은 통일신라 시대의 처용상이다. 새해에 액운을 막는다는 의미로 아내와 동침한 역신을 쫓아냈다는 설화의 주인공인 처용의 얼굴을 그려 대문에 붙여 놓는 문배(門排) 풍습은 조선까지 이어졌다. 고려 시대에도 고분 벽화나 고려청자에 새겨진 문양에서 민화적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초에는 새해를 축하하며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주던 세화(歲畵)가 민간으로 확산하고, 민간인이 시주한 불화에도 민화적인 표현이 나타난다.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이 그리던 궁중 회화가 민간으로 확산하고 천용자 같은 민화가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조선 말기에는 옷, 자수, 건축물 등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주제의 민화가 그려졌다. 서울에서는 민화를 가게에서 판매했고, 지방에서는 민화가가 장터나 집집을 돌며 팔았을 정도다.



◇ 민화 소재로 사랑받은 호랑이·까치

민화에서 가장 친숙한 동물은 호랑이와 까치다. 소나무를 배경으로 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등장하는 작호도(鵲虎圖)는 새해에 대문에 붙이는 문배그림이다. 소나무는 음력 정월을 의미하며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호랑이는 액운과 잡귀를 막아준다고 믿었다. 호랑이를 위정자, 까치를 백성으로 보고 부패한 위정자를 선량한 백성이 꾸짖는 그림이라는 해석도 있다. 무관들은 무리를 지은 호랑이나 표범을 그린 군호도(群虎圖)로 집안을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소나무 아래 두 마리의 호랑이가 해를 바라보고 있는 부자동조도(父子同朝圖)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아침을 맞이한다'는 뜻이지만, 호랑이는 당상관 이상의 무관을, 해는 임금을, 소나무는 지조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해석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무과에 급제해 지조를 가지고 한 임금을 섬기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평생 책을 읽고 유교의 덕목을 익히는 선비들의 의지와 바람은 문자도(文字圖)와 책가도(冊架圖)에 담겼다. 문자도가 처음 중국에서 전해졌을 때는 목숨 수(壽)자와 복 복(福) 자를 잔뜩 그려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가 그려졌지만, 이후 유교적 가르침을 전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정조는 효도(孝), 우애(悌), 충성(忠), 믿음(信), 예절(禮), 의리(義), 청렴(廉), 부끄러움(恥) 등 여덟 가지 유교 덕목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문자에 해당하는 고사나 신화, 민담을 상징하는 물상을 글자 안에 그려 넣은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를 보급했다.
가까운 것이 작고 먼 것이 큰 역원근법을 사용한 책가도(冊架圖)도 이 시기에 많이 그려졌다. 책과 벼루, 붓 등의 정물을 그린 책가도는 학문을 숭상하고 많은 책을 읽고 싶어 한 선비들의 사랑방을 장식했다.




◇ 부귀·행복 염원 담은 길상도

부귀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다양한 소재에 담은 길상도는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十長生圖)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물속 생물들도 등장하는데, 물고기는 다산과 길상, 게는 조개와 화합, 새우는 부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해도(魚蟹圖)는 부부가 아이를 많이 낳고 백년해로하라는 의미로 부부의 방에 들였다. 어해도 중에서도 현재까지 인기 있는 그림 중 하나가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다. 잉어는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 여의주는 과거 급제, 태양은 임금을 상징한다. 잉어가 중국 황허강 중류의 급류인 용문을 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유래해 크게 출세한다는 뜻의 '등용문'(登龍門)을 표현한 그림이다. 현재까지 시험 합격과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고시 준비생과 공무원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속인들의 재물에 대한 바람도 시대를 불문하는지라 이를 상징하는 부엉이 그림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부엉이는 밤새 눈을 뜨고 있어 재물이 새어나가거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막아준다는 의미로 그렸다. 부엉이는 또 먹이를 모으는 습성이 있어 재물을 불려준다고 믿어 곳간에 부엉이 그림을 붙였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인 남극성을 의인화한 수성(壽星) 노인과 3천 년 만에 꽃이 피고 3천 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고 다시 3천 년이 지나 익는다는 천도복숭아 선도(仙桃)를 같이 그린 신선동자도는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노인의 방에 주로 놓였다.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노안도(蘆雁圖)도 음이 같은 노안(老安)의 의미를 담아 노인의 생일에 선물하기도 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잇단 출산과 급제를 의미하는 연꽃 등을 그린 화훼도는 안방을 장식하거나 혼례 병풍으로 쓰였고,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도(葡萄圖)는 신혼부부의 방에 놓였다.



◇ 민화 속 설화와 종교

설화도는 신화나 소설, 민담 등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다. 바리공주도는 바리데기 설화의 주인공 바리공주를 담았다. 버림받은 바리공주가 저승에서 생명수를 가져다 부모를 살렸다는 이야기다. 무가의 신이 된 바리공주는 죽은 사람의 넋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씻김굿(지노귀새남)을 할 때 무녀의 사당에 모셔진다.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칠성신도(七星神圖)도 자식을 잉태하게 해 인간의 수명을 길게 해 준다 하여 사찰이나 사당에 모셨던 그림이다. 산신도(山神圖)는 도교가 전파되면서 호랑이와 산신을 숭배하던 산악숭배 신앙이 반영된 그림이다. 노인의 모습을 한 산신과 호랑이를 함께 그린 산신도는 행복과 재물, 무병장수를 가져다준다고 믿어 무당의 사당과 마을의 산신당, 사찰의 산신각에 칠성도와 함께 모셔졌다.
인간의 부귀영화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교적 인생관이 잘 녹아 있는 김만중의 국문소설 '구운몽'도 여덟폭 그림에 담겼다. 2층에는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한민국 민화대전 수상작들과 기증작 등 현대 민화를 전시하는 기획전시실과 성인을 위한 춘화 전시실이 있다. 상설전시실이 있는 1층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4D 영상체험장과 머그컵, 부채, 에코백 등에 민화를 그려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관람 시간 = 09:00∼18:00(입장 17:30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료 = 어른 5천원, 초중고생 4천원, 유치원생 3천원. 20인 이상 단체 1천원 할인, 강진군민 50% 할인
▲ 문의(☎) = 061-433-977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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