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기다린 지메르만의 내한…최상급 보석처럼 빛을 발한 음색

입력 2018-10-20 15:33  

15년 기다린 지메르만의 내한…최상급 보석처럼 빛을 발한 음색
지메르만과 에사 페카 살로넨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나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사악하게 만드는 데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었던가?…우리는 변화하려 하지 않고 파멸하려고만 했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진지하면서도 섬세한 피아노 소리는 번스타인의 교향곡 2번이 담고 있는 W.H.오든의 '불안의 시대'의 핵심 사상을 외치며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듯했다. 그는 시인의 목소리이자 이 세상의 관찰자가 되어, 때로는 오케스트라의 광포한 연주에 휩쓸려 세상에 동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오케스트라 소리와 동떨어진 또 다른 세계의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히 번스타인 교향곡 2번 제1부, 인생의 일곱 시기를 다룬 부분에선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을 품은 청소년기의 순수함으로부터 인생의 상처에 괴로워하는 노년기까지 다양한 삶의 시기가 생생하게 펼쳐져 인상적이었다. 오든의 시에 바탕을 둔 번스타인의 교향곡 2번은 비록 국내 음악애호가들에겐 다소 낯선 곡이지만, 번스타인의 작품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지메르만의 피아노 연주였기에 그 음악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정교하고 섬세한 연주력으로 세계 음악애호가들을 사로잡고 있는 피아니스트 지메르만의 이번 내한 공연은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되며 많은 기대를 모았다. 이번 내한은 2003년 예술의전당 독주회 이후 15년 만이다. 특히 예민한 성품으로 유명한 지메르만의 공연이 순조롭게 성사될 수 있도록, 주최 측에서는 지메르만의 협연으로 연주될 번스타인의 교향곡 2번이 연주되기 전에 휴대폰의 전원을 완전히 끄는 것은 물론 연주 중 박수 소리 등 연주에 방해되는 소리가 절대 나지 않도록 매우 긴 안내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지메르만은 주최 측의 기록용 영상 및 사진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차분하고 집중력 있는 분위기 속에서 연주회가 진행됐고, 청중의 귀는 지메르만이 만들어내는 피아노 음 하나하나에 빠져들었다.
음반에서도 빛을 발하는 지메르만 특유의 잘 다듬어진 톤은 실황 공연에선 한층 더 빛났다. 그의 연주를 실황 공연으로 듣는 경험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세공된 최상급의 보석을 감상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만들어낸 음 하나하나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하며 잘 다듬어져 있었고, 살로넨이 이끄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잘 조화됐다. 때때로 오케스트라는 금관악기 소리가 강조된 압도적인 소리로 피아노를 위협하는 듯했지만, 깊은 내공이 담긴 지메르만의 피아노는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화답했다.
이번 공연 후반부에 연주된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선 에사 페카 살로넨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놀라운 기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내한 공연 때마다 뛰어난 연주로 국내 관객들을 사로잡아왔지만, 에사 페카 살로넨과 함께 한 이번 공연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박자가 자주 변하고 리듬 표현이 까다로운 버르토크의 음악에서도 살로넨의 지휘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자로 잰 듯 정확하고 빈틈이 없으면서도 매우 역동적이고 강한 활력으로 가득한 그의 지휘에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자신감 있게 기량을 과시하며 매우 흥미진진한 연주를 선보였다. 4악장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주제를 풍자한 부분에서 트롬본 주자는 일부러 더 큰 소리로 과장된 어조로 연주해 풍자적인 면모를 보이는가 하면, 정신없이 빠른 악구들을 소화해내야 하는 5악장에서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기술적인 면을 넘어 이 음악을 즐기면서 연주하는 여유를 보였다. 또한 두 대의 악기들이 쌍을 이루어 연주하는 부분이 많은 2악장 '쌍의 놀이'에선 솔로 악기들과 잘 어우러져야 하는 작은 북 연주가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작은 북을 목관 악기들 가까이 배치하는 음악적인 배려도 눈에 띄었다. 버르토크의 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열렬히 환호했고, 살로넨이 이끄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앙코르로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와 바그너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을 섬세하면서도 화려하게 연주해내며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herena88@naver.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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