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교리에 갇힌 神은 없어요"

입력 2018-11-12 08:01   수정 2018-11-13 13:33

[연합이매진] "교리에 갇힌 神은 없어요"
'고전문헌학자' 배철현 교수가 보는 '神과 종교'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신(神)은 존재할까?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고통받는 인간에게 침묵하는 것을 보면 신은 없는 것 같다가도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그렇게 오래도록 믿어온 것을 보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유고집에서 "신은 없다"고 했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배철현(57)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 신"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신은 교리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원칙 같은 것"이라고 부연한다. 그러면서 "교리에 갇힌 신은 단연 없다"고 말한다. 배 교수는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등이 포함된 셈족어, 이란어와 산스크리트어가 포함된 인도-이란의 고대 언어를 연구해온 고전문헌학자다. 인류의 생각과 지혜가 담겨 있는 오래된 경전과 고전의 바다를 항해하며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혁하는 원동력이 '글쓰기'에 있다고 강조하는 그는 청년들을 대한민국 리더로 양성하기 위한 '글쓰기 수련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 고전문헌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 인류가 남긴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만리장성,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루브르 박물관 등을 말하겠지만 저는 고전문헌이라고 생각합니다. 1988년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겸손하면서도 강력하고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교수님이 있었어요. 도대체 누구길래 저런 표정을 갖고 있을까 싶었는데 셈족어를 가르치는 고전문헌학 교수더라고요. 생활과 가르침이 일치되는 사람이었죠. 그렇게 그분이 좋아서 고전문헌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려는 경전과 고전이 모두 번역본인 거예요. 번역본으로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훈민정음을 러시아어로 읽는 것과 같은 거였죠. 고전과 경전을 원전으로 읽고 싶은 욕망이 생겼어요. 그래서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등 인류의 고전에 쓰인 고대 언어들을 배우기 시작했죠. 미국에서 그 교수님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제 박사학위 지도교수가 되었는데 제가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욕망을 일깨워주셨죠. 결국 공부하는 것이 저의 일생 업무가 됐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 수천 년 된 고전문헌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 요즘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스토아학파 철학자의 책을 읽고 있어요. 이 중 아우렐리우스는 모든 권력과 부를 가진 로마의 황제였는데 야전에서 게르만족과 전쟁을 하면서도 매일 밤 목욕재계하고 일기를 썼죠. 우리에게 '명상록'이라고 알려진 이 책의 원래 제목은 그리스어로 '타 에이스 헤아우톤'으로, 번역하자면 "그 자신에게 당부(當付)하고 싶은 것들"이란 뜻입니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즐겁고 진실하게 자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들을 한 글자씩 기록했죠.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자기에게 감동을 주는 목표가 있어야 발전할 수 있어요. 대부분은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흉내 내거나 부러워하며 살고 있죠. 고전문헌에는 인류의 지혜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인에게 이탈리아와 단테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면 대부분 단테를 선택합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단테 같은 인물이 없는 나라는 후진국이에요. 우리는 지금 남들이 해놓은 것을 외우게 하고, 입시교육에만 몰두하고 있어요. 교육의 핵심은 글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바로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이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는 공부를 시켜야 해요. 스마트폰에는 거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서울대 학생 모두를 합친 것보다 똑똑하죠. 이제 외우는 것은 그만하고 창의적인 것을 생각해낼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해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하죠. 생각하는 훈련에는 글쓰기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 "외우는 것 그만하고 생각해내는 공부해야"

-- 최근 스티븐 호킹은 유고집에서 "신은 없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신의 존재를 믿나요.
▲ 신은 누구냐고 1천 명에게 물으면 대답이 다 다릅니다. 어떤 특정 종교의 신을 말하면 그게 모두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달리기가 신이에요. 달리기는 저를 변화시키기 때문이죠. 인간을 개선시키지 않는 종교와 신은 가짜입니다. 신은 교리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원칙 같은 거죠. 스티븐 호킹이 "없다"고 말한 신은 종교의 교리에 갇힌 신일 겁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듯 교리에 갇힌 신은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자신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자신에게 감동을 주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도록 하는 어떤 이상(理想)을 '신'이라고 지칭하는 겁니다. "신은 사랑이다"라고 하면 사랑이 바로 신인 거예요. 저기 멀리 구름 뒤편에서 나를 지켜보는 신은 없다고 생각해요.

-- 그렇다면 종교는 무엇입니까.
▲ 아인슈타인은 종교를 '경외심'이라고 했습니다. 우주를 과학적으로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그가 가진 지식은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의 100만분의 1도 안 되거든요. 그 엄청난 무한 세계에 대해 경외심이 생기겠죠. 칸트가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과 인간의 양심을 신이라고 했듯이 종교는 삶에 대한 경외심 같아요.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인간의 삶은 매우 짧습니다. 내가 없었던 시간이 훨씬 더 길죠. 인간은 길어야 100년을 살다가 다시 없음의 무한으로 향하는 거예요. 그렇게 짧은 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만들 것이냐가 중요하죠. 종교는 바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도록 자극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 저서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 신의 위대한 질문'은 구약성경을 내용으로 합니다. 구약성경은 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답안지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삶을 깊이 보게 하는 질문지죠. 다른 고전과 마찬가지로 성경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삶을 돌아보게 해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질문은 하느님이 아담에게 한 "네가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이 질문은 사실 하느님이 아니라 성서를 쓴 사람이 한 거죠.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고 있느냐"를 질문한 겁니다. 네가 지금 가고자 하는 그 길 위에 있느냐는 거죠. 성경의 중요한 주제는
'다름'입니다. 다름을 달리 말하면 '거룩함'이고 그것은 곧 '신'이에요. 또 다른 한편으론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다른 집단을 뜻합니다. "원수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 이것을 설명해주죠.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신약성경을 내용으로 합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한 말을 들여다보죠. 예수는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저는 '깊은 데'라는 것을 "너의 심연에 있는 최고의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 깊은 곳에 가봤느냐"는 질문으로 해석했어요. 베드로가 당시 어부였는데 나중에 로마에 가서 연설을 한 번 하면 5천 명씩 회개했다고 해요. 이 사람은 하루에 1만5천 명도 더 먹일 사람이었죠. 그런데 물고기를 잡아 하루에 두 명만 먹인다면 그건 죄인 겁니다. 직무유기이기 때문이죠. 죄는 바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 "자신이 해야 할 일 모르는 게 罪"

-- 사람들은 각자 인생의 마아트(임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 마아트는 각자가 해야 하는 고유한 임무입니다. 인간은 연극 무대에 선 배우와 같아요.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배역을 알고 그것에 몰입해 연기하는 거죠. 사람은 자기의 배역을 알아야 해요. 회사에 입사 지원할 때 막연하게 광고를 보고, 또는 친구가 지원해서 가는 것은 아니죠. 정말 자기가 원하느냐를 질문하는 것이 자신의 마아트를 찾는 첫 번째 발걸음이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깊이 생각할수록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찾지 못하는 거죠. 친구나 사회가 좋다는 것을 따라 자신의 일생직업으로 삼는 행위는 무식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고 아름다운 것이 나에게도 그렇지는 않죠. 나에게 좋고 아름다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고 아름다운 거예요. 마아트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이 있어야 찾을 수 있습니다. 학교나 가정에서의 교육은 내가 할 일이 뭔가를 끊임없이 묻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교육이 진행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 어떻게 해야 객관적 시선을 가질 수 있나요.
▲ 객관적 시선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거예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연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듯이 상대방의 시선으로 행동하는 거죠. 자기 생각이 사실 한정된 경험 안에서는 진리이지만 남에게는 거짓일 수 있어요. 객관적 시선은 바로 이런 것을 살피는 마음이죠. 객관적 시선을 갖지 못하면 우연히 편협하게 경험한 것이 진리라고 착각하게 돼요. 그래서 타인과 부딪히고 싸우게 되죠.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경청(傾聽)이에요. 우리나라 몇몇 정치인들을 보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고 상대방에게 면박을 줍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의 기본인 경청을 수련해 본 적이 없는 부류들이죠.

-- 갈수록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어요. 객관적인 옳고 그름은 숙고와 토의를 통해 도출된 동의예요. 옳고 그름이라는 것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해소되는 거예요.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거죠. 첨예한 이념 문제와 북한과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숙고와 토의, 경청이 무척 중요합니다.

◇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청"

-- 우리는 삶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운명적으로 던져진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은 좀 더 편하고 어떤 사람들은 좀 더 불편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거나 술주정뱅이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냥 운명적으로 태어납니다. 이런 경우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고통에 대해 많이 생각할 기회가 생겨서 남들보다 더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추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기치 않은 불행한 사고를 당해 일생 고통을 받을 수도 있어요. 우리 근대사에서 6·25전쟁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혹은 최근의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가 자기 가족의 일원이라면 그 고통은 더욱 심할 것입니다. 혹은 사랑하는 가족이 불치병을 앓거나 자기가 그런 병에 걸려 투병 중일 수도 있겠죠. 고통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우연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고통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키는 발판이에요. 중요한 것은 고통을 대하는 태도죠. 자기가 고통을 당하면 고통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고, 고통이 없는 상태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인간에게 고통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경계입니다. 한편 인간은 지금 고통을 동물에게까지 확대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은 동물의 고통을 인간의 고통처럼 여겨 동물 학대를 생명존중에 대한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식용견은 우리 스스로가 타인과 다른 동물에 대한 고통에 둔감한 미개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인간에게 죽음은 무엇입니까.
▲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어요. 삶은 매일매일 죽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죠. 죽음을 염두에 두면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이 선명해집니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에 대한 타인의 기대나 거추장스러운 체면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스티브 잡스도 췌장암에 걸리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았다고 해요.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을 알려주는 알람시계 같아요.

◇ "죽음, 해야 할 것을 알려주는 알람시계"



--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 동물은 배가 부르면 다른 일을 하지 않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육체적인 것 이외에 정신적인 만족이 있어야 해요. 영적인 환희를 느껴야 하죠. 그래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나 베토벤의 심포니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있었죠. 인간은 동물이면서 신적인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니체는 "인간은 외줄"이라고 정의했어요. 한쪽은 동물의 본성이, 다른 한쪽은 신적인 본성이 잡아당기고 있다는 거죠. 동물적인 본성이 지배하면 동물이 되고, 신적인 본성이 지배하면 신적인 존재가 되는 거예요. 소크라테스, 예수, 부처는 모두 신적인 존재들이죠. 저는 요즘 "자신에게 감동적인 자기 자신"을 찾고 있어요. 되고 싶은 나 자신을 상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거죠. 물론 모델을 외부에 두면 안 돼요.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정진하는 사람은 외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교수님이 정의하는 행복은 무엇입니까.
▲ 흔히 우리가 아는 행복은 18~19세기 영국 사회를 지배한 공리주의적 행복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할 때 99명이 행복하고 1명이 불행하다면 과연 그것을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돈, 자동차, 집 등 물질적인 것에 행복을 일치시키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을 '유다이모니아'라고 합니다. 유다이모니아는 '최선'이란 뜻이에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거죠.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야 해요. 저는 자신이 가진 천재성을 최선을 다해 발휘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저에게 감동을 주는,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감동을 주는, 하고 싶은 일은 명상과 수련을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고독한 '심연'의 공간에서 '수련'을 하는 거죠.

◇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

-- 저서 '심연'에서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물은 '고독'이라고 했습니다.
▲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생각나죠. 다른 사람하고 있으면 자신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해요. 혼자 있으면서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연습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어요. 자신만의 고독한 공간을 마련하세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그 공간은 책상 앞, 출퇴근하는 차 안 등 어디나 될 수 있죠. 그리고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거예요.

--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유대인의 황금률은 공자가 말한 '서'(恕)의 개념과 같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같은 말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 인간의 삶이 같기 때문이죠. 우리는 씨족과 혈족을 넘어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과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볼 수가 있어요. 이것의 핵심은 바로 논어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성경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등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비' '사랑' '연민'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것이 바로 인간이 만든 문명의 핵심이에요. 그런데 지금 우리를 보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며 살고 있어요. 이런 배척은 인간 문명의 근간을 해치는 아주 위험한 행동입니다.

-- 글쓰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훈련을 해야 해요. 우리 사회에 갈등이 많은 것은 우리가 갈등을 푸는 훈련을 하지 않아서예요. 이런 훈련은 어렸을 때 대화에서 시작되죠. 대화할 때 어떤 말을 골라서 하느냐가 중요한데 이것은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어요.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이에요. 자기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혼자만의 시간이 바로 글쓰기에요. 글쓰기와 말하기는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저는 글쓰기가 우리나라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죠. 그 도약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글쓰기인 거예요. 지금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데 남이 해놓은 것을 따라가며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5차, 6차 산업혁명을 만들어내는 생각의 힘이 필요하죠. 글쓰기는 바로 그런 생각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 "글쓰기, 생각하는 힘 길러준다"

-- 명상과 달리기를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 명상과 달리기를 해야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요. 3년 전부터 시작한 명상은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며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거예요. 40분 정도 가만히 앉아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죠. 이런 시간이 없이 하루를 지내면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습관적으로 외부에 반응하며 수동적으로 살 뿐이죠. 능동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의 행동과 말을 스스로 조절하는 거예요. 그래서 명상을 통해 떠오르는 생각을 생각해보는 거죠. 이렇게 생각에 몰입하고 그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결심을 하죠. 또 매일 아침 3~4㎞를 뜁니다. 달리기는 30년 정도 됐죠.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달리기라고 생각해요. 인간만이 3㎞ 정도를 쉬지 않고 땀을 내며 뛸 수 있죠. 땀을 낸다는 것은 저 자신을 완전히 비운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해요.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 리더의 마음가짐에 대한 책인 '메'를 곧 출간하려고 합니다. '메'는 인류 최초의 문명을 구축한 수메르인들의 마음가짐을 말하죠. 그들은 누구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임무를 '메'라고 불렀어요. 자신에게 리더인 사람이 남들에게도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 요가 수트라, 그리스 비극에 대한 책도 내년에 출간할 계획입니다. 또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공부하며 수련하는 기관을 설립하려고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서양의 고전과 경전을 공부하면서 그 책들이 서구사회를 변혁시키고 창조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글쓰기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원동력이에요. 대한민국이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경제성장이나 정치적인 안정이 아니라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천재들에 대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천재는 시험 성적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분야를 찾아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글쓰기 수련원'에서 자신만의 천재성을 발굴하고 싶은 젊은이 30여 명을 선발해 4년간 라틴어를 배우고 고전어와 경전을 깊이 읽고 글을 심오하게 쓰는 훈련을 시키려고 합니다. 저는 이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리더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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