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이어 인천공항공사·가스공사도…의혹 규명이 우선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서울교통공사에서 불거진 '고용세습' 의혹이 다른 공공기관으로 하나둘 확산하는 양상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기존 직원의 친인척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난 게 의혹의 출발점이다. 일단 사실 여부를 규명하는 게 우선이지만, 공공부문 정규직화 사업에 비리가 끼어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한국가스공사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가스공사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정해진 비정규직 1천203명 가운데 25명(2.1%)이 기존 직원의 4촌 이내 친인척으로 파악됐다.
가스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따른 것으로, 기간제와 파견·용역이 그 대상이다.
가스공사의 정규직 전환 대상은 상시·지속성이 있는 업무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으로, 구체적으로 누구를 정규직으로 전환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한 단계는 아니다. '채용 비리'를 따지기는 아직 이르다는 얘기다.
정규직 전환 대상 규모가 결정되면 심의기구를 통해 그 업무에 누구를 채용할지 결정하게 된다. 재직자를 우선으로 채용하는 게 원칙이지만, 업무에 따라서는 경쟁채용 등을 도입할 수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2016년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 자체적으로 추진해온 것으로, 가스공사의 경우와는 성격이 다르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지난 3월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천285명 가운데 8.4%에 달하는 108명이 기존 직원의 친인척으로 드러난 게 의혹의 핵심이다. 실제로 채용 비리가 있었는지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규명해야 할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던 인천공항공사에서도 정규직화 계획 발표 이후 협력업체에 친인척을 채용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협력업체 입사자 2명의 모친이 인사 담당자에게 향응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인천공항공사는 작년 12월 사건 제보를 받고 경찰에 수사 의뢰했으나 지난 5월 무혐의 통보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인천공항공사의 사례에서 보듯 대부분의 '고용세습' 의혹은 사실관계가 확실하지 않거나 처벌 여부를 가리기 어려운 의혹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의혹이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규직화 과정에서 익명 제보를 활성화하는 등 비리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산업 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극심한 차별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그 과정에 비리가 개입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우려됐다.
정부는 작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정책을 예견한 불공정 채용도 우려되므로 가이드라인 발표 직전에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경우에는 보다 엄격한 평가 절차를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는 지난 5월 '공공부문 2단계 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도 "정규직 전환 정책을 기대하며 새롭게 채용된 비정규직 근로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근로자가 정당하게 채용됐는지 등을 각 기관에서 면밀하게 조사한 뒤 전환 대상자 여부를 판단할 것"을 당부했다.
야권은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일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을 두고 노동조합이 개입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귀족노조가 개입한 고용세습' 의혹이라는 쟁점을 부각하고 있다.
고용세습은 거대 노조가 있는 현대차와 같은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으로 기존 직원 자녀 등을 우선 채용하도록 한 것을 비판하는 데 주로 쓰인 용어다.
노동계 관계자는 "서울교통공사와 같은 개별 사업장에서 채용 비리가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할 일"이라며 "고용세습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은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ljglor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