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청와대 사칭' 먹히는 사회적 토양 부끄럽다

입력 2018-10-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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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청와대 사칭' 먹히는 사회적 토양 부끄럽다

(서울=연합뉴스) 대통령 또는 청와대 관계자를 사칭한 사기 행각이 잇따르자,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그러한 사례가 공개됐다.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문 대통령 명의로 '도와주라'는 취지의 가짜 문자 메시지를 보내 피해자로부터 수억 원을 편취했거나, 임종석 비서실장과의 친분을 사칭해 '모친을 사면해주는 조건으로 임 실장이 3천만 원을 요구한다'며 피해자로부터 돈을 가로채는 등 어처구니없는 사례들이다. 수석이나 비서관과의 친분을 부풀려 속이는 수법을 이용하거나 자신을 청와대 행정관으로 사칭한 사기 사례까지 있다.

지난해 정부 출범 직후 한두 건이 적발됐는데, 유사한 사기 행각들이 누적됨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서 국민에게 알리기로 청와대가 결정했다고 한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청와대를 사칭한 터무니없는 사기 행각이 빚어지고 또 피해자들에게 먹혀든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청와대 관계자 사칭 사기는 범죄자들의 사기 행각도 문제지만, 이러한 범죄가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 자체를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빽이 통한다"는 사고가 지배하거나, 법치와 정상을 우회하는 편법이 작동한다고 믿는 후진적 사회의 범죄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이용한 사기 행각의 대표적 사례로 이승만 정부 시절의 '가짜 이강석' 사건이 거론된다. 20대 청년이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된 이강석을 사칭, 지방 기관장들을 농락한 사건으로 그 무렵의 세태를 보여준다. 50년대 우리나라의 취약한 법치 수준과 권력의 위세를 드러내 보이는 일그러진 일화이다. 민주주의와 법치가 왜곡돼 있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의식과 문화는 청와대나 권력 기관을 사칭한 크고 작은 사기 사건들이 빈발한 토양이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권력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탄핵당한 시대가 아닌가. 공직자와 시민들이 법과 제도에 의해 주어진 권한의 책임과 의무를 깨우치고 되새기는 때에 잇따른 청와대 관계자를 사칭한 사기 사건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이 아니라 청와대가 청와대 관계자 사칭 사기 사건들을 공개한 것은, 이 사건들을 여러 유형의 범죄 중 하나로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배경이나 지나온 과정 등을 봤을 때 도저히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되는데, 그럼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서 취합해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이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주도적으로 공개한 만큼 후진적인 사기 행각이 왜 빚어지는지를 되짚어보고, 법치나 제도의 운용 과정에 느슨함이 없었는지 사회적 차원에서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련의 사건들에 청와대 관계자가 실제 관여된 것이 없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청와대는 임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어떤 위법사례도 발생하지 않도록 엄정한 근무 기강을 유지하도록 주변을 살펴야 한다. 권력형 비리 가능성은 언제나 국민의 우려 사항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권력형 비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는 국정 수행의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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