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피살 파문 속 리야드 FII 개막…사우디, 선긋기 부심
사우디 국영매체 "사업은 사업…사우디 사업기회에 여전히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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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세계 경제계의 유력 인사를 불러 모아 탈(脫) 석유 시대의 비전을 야심 차게 밝히는 국제회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가 23일 사흘간 일정으로 사우디 리야드에서 개막한다.
지난해 10월 처음 열린 이 행사는 미국과 유럽의 장관급 인사와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의 창업자, 최고경영자(CEO) 등 90여 개국에서 온 유력 경제인 3천800여 명이 대거 참석해 '사막의 다보스'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관심이 쏠렸다.
사우디 정부도 이에 맞춰 메가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과 홍해변 호화 관광단지 개발사업을 발표하면서 석유 왕국의 과감한 변신을 선언, 국제적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 행사의 주인공이자 최대 수혜자였다.
그는 은둔 왕국 사우디를 변화시킬 개혁적인 젊은 계몽 군주의 이미지를 국제 경제계에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계 유력 인사가 그와 나란히 사진찍기 원했고 대규모 투자를 적극적으로 논의했다.
FII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우디 국부펀드 공공투자펀드(PIF)가 주관한다.
그러나 올해 FII는 분위기가 딴 판으로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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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으로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올해 FII는 아랍권을 대표하는 경제 행사가 아니라 정치적 반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이 됐다.
사우디 정부는 그의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그에게 귀국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주먹다짐이 벌어져 우발적으로 사망했으며, 이는 왕실과 전혀 관계없는 돌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도 언론을 통해 매일 새롭게 공개되는 정황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가혹하게 기획 암살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에 FII에 초청된 유력 인사가 불참한다는 뜻을 잇달아 밝혔다.
암살 의혹을 받는 사우디 왕실을 사실상 홍보하는 국제 행사인 FII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최소한의 행위로 해석되는 흐름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김용 세계은행 총재,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브루노 르메흐 프랑스 경제재정부 장관, 왑케 호엑스트라 네덜란드 재무장관, 리암 폭스 영국 국제통상부 장관이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 래리 핑크 블랙록 CEO, 아자이 방가 마스터카드 CEO, 존 플린트 HSBC CEO, 조 케저 지멘스 CEO, 윌리엄 윈터스 스탠다드차타드 CEO, 데이비드 쉼머 런던증시 CEO, 빌 포드 포드 회장,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 등 기업인도 리야드에 오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CNN, 블룸버그 등 세계 유력 매체도 취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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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불참 속에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 사건과 선을 긋고 행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FII 주최 측이 언론에 보낸 행사 안내 보도자료는 카슈끄지 사건에 대한 의혹이 한창 달아오르던 15일자가 마지막이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은 22일 홈페이지에 실은 '카슈끄지 이후 결국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FII에서 사업가들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주주에게 이익을 주는 큰 그림과 사우디와 함께하는 사업 기회를 바라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칼럼을 쓴 사우디 경제학자 무함마드 라마디는 외국 CEO의 FII 불참을 '삼키기 쓴 약'이라며 "이스탄불 영사관에서 벌어졌을 법한 일, 아예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충격적 주장과 휴먼 스토리에 일부 투자자가 흔들릴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유명 인사와 CEO가 불참한 회사들이 FII에 고위, 중간 간부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최대 원유 수출국, 아랍권과 사업하려면 단기전과 장기전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라며 "전혀 좋은 점이 없다면 왜 사업가들이 여전히 사우디에 오려고 하겠는가"라고 반박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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