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술대회·특별전 개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둘레가 1.4㎞에 이르는 삼국시대 산성인 경남 함안 성산산성(사적 제67호)은 '목간(木簡) 보물창고'로 불린다.
목간은 문자를 기록한 나무 조각. 문헌이 적은 고대사 연구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기록유산으로, 성산산성에서는 우리나라 고대 목간의 약 40%인 245점이 출토됐다.
성산산성 목간 중 대부분은 수하물에 꼬리표로 매단 하찰(荷札)인데,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얼마나 보낸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곳에서는 고대 문서 행정을 알 수 있는 문서 목간도 일부 나왔다.
성산산성을 발굴하고 조사보고서를 펴낸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1991년부터 2016년까지 17차례에 걸쳐 진행한 조사에서 찾은 목간의 역사적 가치를 고찰하는 국제학술대회를 한국목간학회, 함안군과 함께 25일부터 26일까지 함안문화원에서 연다.
23일 배포된 발제문에 따르면 기조 강연자인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성산산성 목간은 1992년 처음 2점이 발견된 뒤 조사 때마다 몇 점 혹은 수십 점씩 나왔다"며 "목간이 새롭게 추가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성산산성 목간은 신라의 촌락 지배 강화와 함께 기존 외위(外位·지방민에게 주어진 관등) 체계와 성립 과정, 이에 내재한 의미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다"며 "신라가 새롭게 편입한 지역과 주민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용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김재홍 국민대 교수는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연대' 발표에서 532년 혹은 592년으로 추정되는 '임자년'(壬子年) 목간에 대한 논의와 성산산성 축조와 연계해 목간 작성 시점을 추정한 학계 연구 결과를 정리한다.
김 교수는 산성의 중심이 되는 체성벽은 6세기 후반에 축조했다고 판단되나, 내벽 보축(補築)이나 부엽층에서 출토한 유물은 7세기에 조성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성산산성이 6세기 후반에 처음 세운 뒤 7세기 전반에 보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목간 사용 연대도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문서 목간에서 확인되는 '○월중(月中)'이라는 표현은 6세기 중반까지 사용됐다는 점에서 제작 시기를 551∼575년으로 비정할 수 있다"며 "구체적 간지를 기록한 임자년 하찰 목간 제작 시기는 이보다 늦은 592년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학술대회에서는 이외에도 성산산성 축조기법 특징, 하찰 목간 서식과 성격, 문서 목간과 문서 행정, 목간의 국어사적 의의, 6세기 신라 촌락사회와 지방지배 단면에 대한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연구소는 학술대회가 열리는 25일부터 12월 20일까지 창원 연구소 전시실에서 특별전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여정'을 개최한다.
출토 목간 중 70여 점을 공개하고, 하찰 목간으로 고대 생활상을 재해석한 설명 자료를 선보인다. 나무에 글씨를 쓰는 체험 행사도 운영한다. 관람료는 없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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