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동물사전2' 배역 논란에 "J.K 롤링 작가 믿는다"
"기다림, 거절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야"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저도 외국에서 일하는 아시아 배우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역할을 신중하게 하는 선택하는 편이에요. 이번 논란과 관련해선 J.K 롤링 작가님을 믿어요. 항상 소외된 사람에 관해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죠. '내기니' 이야기도 이제 시작인 만큼 앞으로 논란을 잊게 할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23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신비한 동물사전2')에 출연한 배우 수현(33)을 만났다. 그는 최근 배역 논란과 관련해 "논란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다음 달 14일 개봉하는 이 작품은 전작 '신비한 동물사전'에 이어 '해리포터' 시리즈의 J.K 롤링이 각본을 쓴 작품으로, 192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전 세계 미래가 걸린 마법대결을 그린다.
수현이 맡은 역할은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한 악의 화신 볼드모트의 애완 뱀 '내기니'. 극 중 피의 저주를 받아 뱀으로 변하는 여성 서커스 단원으로 나온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수현의 역할이 알려지자, 내기니가 실은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아시아계 여배우를 애완 뱀으로 설정한 데 대해 논란이 일었다.
"오디션을 볼 때까지만 해도 쪽대본이어서 내기니 역인 줄 몰랐어요. 영국에 가서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을 만나고, 배우 에즈라 밀러와 호흡을 맞추고 나서야 알았죠. 그때 깜짝 놀랐어요. 왜냐고요? 내기니 역할이니까요"
학창시절 '해리포터'가 한글로 나오기 전 원본으로 사서 읽을 정도로 열혈 독자였던 그는 "내기니는 볼드모트의 영혼을 지닌 뱀으로, 애완동물이기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신비한 동물 사전' 시리즈는 총 5편으로 기획됐다. 수현은 후속편에도 출연한다. 그는 "롤링 작가님은 캐릭터마다 놓치지 않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는 '반전의 여왕'"이라며 "내기니 이야기도 비중 있게 잘 써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후속편에 관해 살짝 귀띔해달라고 말하자 수현은 "비밀"이라며 "실제 배우들도 전체 스토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감독님에게 의존하면서 연기한다"고 전했다.
뱀으로 변하는 역할은 수현에게 색다른 도전이었다. "아주 간단하게라도 뱀의 움직임을 넣으려고 했죠. 감독님도 '뱀을 2% 정도 가미해봐라' 이런 식으로 디렉션을 주셨기 때문에 거의 제 본능에 의존해서 연기했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재미있었죠."
촬영 현장 뒷이야기도 들려줬다. "배우와 스태프가 굉장히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사람들이다 보니 정말 가족적인 분위기였어요. 시대 배경이 1920년대 파리지만, 실제 촬영은 영국의 세트에서 했죠. 세트가 파리 시내를 그대로 재연한 것은 물론 작은 소품까지 파리에서 공수해온 물건들로 채워져 정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 에즈라 밀러와 조니 뎁 등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말했다.
"에즈라 밀러는 색다른 에너지를 지닌 배우예요. 순박하고 깨끗하면서도 끼도 많고 음악도 잘하죠. 지난 8월 에즈라 밀러가 공연차 한국을 찾을 때도 공연장에 갔었어요. 조니 뎁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고 존경하고 배우예요. 그런 배우가 제 눈앞에서 한 장면 한 장면 촬영할 때마다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롤링 작가님은 굉장히 세련되고 후광이 느껴지는 분이셨죠. 성격도 굉장히 털털한 분이에요."
수현은 2015년 개봉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과 '다크 타워', 미국 드라마 '마르코폴로'와 '이퀄스' 등에 출연하며 글로벌 배우로서 입지를 넓혔다. 특히 '마르코폴로'에 출연하면서 해외에서 그를 알아보는 팬들도 늘었다고 한다.
수현은 최근 아시아 배우들의 위상이 달라진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영화 '서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 아시아계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들이 흥행하면서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배우들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과거 오디션을 본 작품 중에는 아시아인이 할 역할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백인이 섭외되는 경우도 봤어요. 한 영화당 아시아인은 1명이라는 룰을 이야기하는 것도 들었고요.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아시아인을 섭외하는 것 이상으로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수현은 5살부터 11살까지 미국에서 거주하다 이후 줄곧 한국에서 성장했다. 그는 "크면서 정체성 갈등이 심했다. 나는 누구인가, 한국 사람도 아니고 외국 사람도 아니고, 어디에 속해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면서 "그래도 그런 혼란스러움이 좋게 쓰일 수 있는 이 시대에 태어나 이런 영화들을 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지금은 제법 필모그래피를 쌓았지만, 할리우드 도전은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서 많이 울었어요. 매니저에게 전화해 '비행기 표 사서 갈래요'라고 한 적도 많았죠. 아시아계 배우 중 실제로 아시아에서 온 배우가 많지 않아서 오해도 있었고, 그런 것 때문에 외로운 순간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성장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또 자기 색이 분명한 다양한 외국 배우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외국에서 활동할 때 외국 사람이 보더라도 동양인이라고 인식이 안 될 만한 그런 역할, 다른 동양인이 해보지 못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얼마 전 에미상 후보에 오른 샌드라 오가 출연한 작품처럼, 일상적인 역할도 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한국 배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수현은 "계속 시도해야 한다"면서 "거절이나 기다림에 개의치 않고, 뜻이 있다면 계속 용기를 내 대범하게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