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출신 작가…초대전 '달에 비친' 김종영미술관서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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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손이 이렇게 큰 건……."
활짝 웃던 노작가가 그림 앞에서 말을 멈췄다. 손수건을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작가는 한참 눈을 껌벅거린 뒤에야 말을 이어갔다.
"눈물 나네. 자식과 차마 헤어지지 못하겠는 마음에 손이 이렇게 커졌다고 누가 그러데."
서양화가 이동표(86) 그림 '병상의 어머니'(1996)는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가슴에 올려놓은 채 누워있는 작품이다. 젖무덤이 보이지만, 어머니는 젖을 물릴 힘이 없다. 우는 아이를 겨우 토닥일 뿐인 손이 유난히 크다.
작가는 황해도 해주 서쪽 벽성군 동운면 주산리 출신이다. 빈농 아들이었지만 재주를 알아본 담임교사 주선으로 16살이 되던 해 해주예술학교 미술과에 입학했다. 2년 뒤 발발한 한국전쟁은 모스크바 유학을 꿈꾸던 소년 인생을 바꿔놓았다.
인민군 입대, 월남, 수용소 생활 등 곡절 끝에 작가가 붓을 다시 잡은 것은 서른이 훌쩍 넘어서였다. 다양한 풍경과 소재를 방랑하다가, 예순 즈음부터 어머니를 그렸다. 그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는, 사진 한장 없는 어머니였다. 작업 화두는 전쟁, 통일, 고향으로도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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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신관 사미루에서 열리고 있는 이동표 초대전 '달에 비친'은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다.
'병상의 어머니'를 비롯해 '추수한 어머니'(1990), '엄마의 참모습'(1995) 등 투박한 필선과 강렬한 색, 두꺼운 마티에르로 표현한 다양한 어머니상을 만날 수 있다. 어머니와 자식 포옹을 담은 '어머니의 모습'(1994)은 작가가 살던 고양에 떨어진 북한 삐라(전단)를 콜라주한 뒤 그린 작품이다.
일흔, 여든을 넘기면서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깊어졌다. '통일이다 고향 가자' 연작들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귀향을 바라는 깊은 염원을 보여준다. '고향에 가야 한다' '북핵 인류의 재앙을 보는가' 등과 같은 글귀도 함께 등장한다. 그 때문에 그림들은 "한층 더 다급하고 직설적"(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이다.
작가는 23일 간담회에서 "내 작업은 내 인생을 그리는 것이었고, 그 궁극적인 목적지는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고향에 누가 있어서 가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그냥 그 땅에 가고 싶은 것입니다. 떠난 지 68년이 됐지만 지금도 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 길로 가면 무엇이 있고, 저 길로 가면 무엇이 나타나고……다 생생해요."
"고향 가는 길목에서 이렇게 작업을 하고 있다. 나 같은 노인네들에게는 죽어서도, 죽더라도 가야 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작가에게서는 그림을 통해서라도 고향에 닿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12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김종영미술관이 매년 가을 열어온 원로작가 초대전이다. 미술관은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우리 삶, 역사와 밀착된 작업을 성실히 하는 점을 높이 사 이동표 작업을 소개했다.
문의 ☎ 02-3217-6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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