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재단, 의성서 2종 확인…"현존 자료보다 앞서"
강릉김씨 '항길고택 일기'도 기증받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후기 무신 장한상(1656∼1724)이 삼척영장 겸 울릉도 수토관으로서 1694년 9월 울릉도를 조사한 뒤 쓴 보고서를 기반으로 작성한 문헌 '울릉도사적'(鬱陵島事蹟) 이본(異本) 2종이 추가로 발견됐다.
울릉도사적은 조선 정부가 울릉도와 독도를 통치했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이번에 확인된 이본은 기존에 알려진 자료보다 필사 시점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가 23일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24일 '장한상과 울릉도·독도'를 주제로 개최하는 학술 세미나를 통해 최근 의성 조문국박물관에서 발견한 '울릉도사적' 2종이 공개된다.
장한상이 울릉도에서 독도를 목격한 내용을 담은 울릉도사적은 조선이 행정권과 사법권을 시행하고자 관리를 울릉도에 파견한 수토(搜討)의 첫 성과물이다. 조선은 이른바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1694년부터 1894년까지 3년마다 수토를 시행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울릉도사적은 '절도공양세비명'(節度公兩世碑銘)에 실린 글로, 학계에는 1978년 처음으로 존재 사실이 전해졌다.
절도공양세비명은 장한상의 외후손으로 추정되는 신광박이 임인년(壬寅年)에 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학계에서는 장한상 수토와 가까운 1722년을 작성 시점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조선정치사 전공인 이원택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울릉도사적이 수록된 또 다른 책인 '절도공양세실록'(節度公兩世實錄), '교동수사공만제록'(喬桐水使公輓祭錄)을 발견한 뒤 절도공양세비명과 비교한 결과, 신광박이 울릉도사적을 쓴 시기는 1782년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절도공양세실록과 절도공양세비명, 교동수사공만제록은 모두 장한상을 모신 사당인 경덕사(景德祠)에 있다가 박물관으로 갔다"며 "시기적으로는 교동수사공만제록에 수록된 울릉도사적이 가장 이르고, 절도공양세실록과 절도공양세비명이 뒤를 이어 필사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절도공양세비명에는 1724년 세상을 떠난 장한상 비문과 사제문(賜祭文·임금이 내린 제문)이 있어 필사 시점이 1722년이 될 수 없다"며 "절도공양세비명은 절도공양세실록을 필사한 것이 틀림없는데, 서적 편집방식도 특이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교동수사공만제록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세미나에서 울릉도사적에 대한 일본 비판을 반박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동북아역사재단은 25일 강릉김씨 감찰공파 21세손인 김동욱 씨로부터 '항길고택'(恒吉古宅) 소장 자료를 기증받는다.
그중에는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작성한 항길고택 일기도 있다. 그동안 명칭이 와전돼 '한길댁 생활일기'로 알려진 이 자료는 울릉도 수토 관련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연구위원은 "동해 지역에 거주한 가문이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적은 기록이어서 신뢰도가 높고, 생활사 연구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다"며 "일기를 고해상도 촬영해 일반에 공개하고, 수토 관련 기록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