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카슈끄지 살해, 계획됐다"…사우디의 '우발적 사망' 반박
'결정적 증거' 시신 소재 확인 안되고 사우디 협조 기대 어려워 난항 예상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터키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을 '계획된 살인'으로 규정하며 사우디 정부 발표를 공개 반박함에 따라 터키 당국의 수사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지 주목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정의개발당'(AKP) 의원총회에서 카슈끄지 살해가 사전에 계획됐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밝히면서, 수사를 위해 독립된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사우디 정책과 왕실에 비판 목소리를 낸 재미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는 이달 2일 이혼 확인서류를 수령하러 주(駐)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후 사라졌다.
언론을 통해 그가 사우디 왕실이 보낸 '암살조'에 의해 살해되고 시신이 훼손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사우디 측은 17일간 "그가 멀쩡히 총영사관을 떠났다"며 의혹을 반박했다.
실종 18일이 지나 사우디 정부는 그가 몸싸움 중 우발적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교장관 등 사우디 당국자들은 이번 사건이 정부 내 일부 인사가 무단으로 벌인 작전으로, 국왕이나 왕세자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사우디 정부의 발표는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의 연설 내용이나 언론에 유출된 수사 정보와 배치된다.
사건 현장에서 포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수행단 인사가 카슈끄지 피살 당일 왕세자실 실장에게 네 통의 전화통화를 했다는 것이나, 사우디 요원 일행 중 부검에 능숙한 법의학자가 포함됐다는 등 수사 내용 보도는 카슈끄지의 죽음이 우발적이기보다는 사전에 계획된 범죄이며, 왕세자실이 무관하지 않고 적어도 사건을 인지했다는 정황이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이날 사우디 요원들의 현장답사 등 일사불란한 동선과 총영사관의 감시카메라 하드드라이브 제거 등을 사전 계획 정황으로 열거했다.
의혹을 해소하고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면 카슈끄지 시신의 소재를 파악하고, 살인이 사전에 계획됐는지 여부와 왕실의 개입 정도를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터키 수사 당국도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수색과 수사을 벌이고 있으나, 당장 시신의 소재 파악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정적 증거가 될 카슈끄지의 시신은 이미 요원들에 의해 사건 당일 사우디로 반출됐기에 소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일부 중동권 언론은 보도했다.
다만 카슈끄지 약혼녀의 진술이나 피살 당시가 담긴 녹음 등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터키 당국은 늦어도 실종 당일 오후 4∼5시에 그의 신병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에 요원들이 시신을 운반했다면 터키 당국이 그 사실을 인지·확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우디 요원들이 발각 위험을 무릅쓰고 공항을 통해 시신을 반출하기보다는 이스탄불 현지에서 처리했을 수도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카슈끄지의 시신은 어디 있나"라고 사우디 측에 질문을 던졌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카슈끄지의 피살 당시 녹음은 그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공개 가능성도 크지 않다.
녹음의 확보 경위가 불법적일 가능성이 커 공개할 경우 진위 논란 등 역풍을 부를 수 있고, 미공개 상태로 보유하는 것이 터키가 사우디를 상대하기 더 유리하다는 게 이스탄불 외교가의 시각이다.
앞서 19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은 이 녹음과 관련 "터키가 무슨 오디오 테이프를 (마이크) 폼페이오(미국 국무장관)나 다른 미국 관리에게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우리가 이런저런 정보를 다른 나라와 공유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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