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군비 경쟁으로 비화 때는 대북 비핵화 요구 명분 약화 우려
北비핵화에 中·러 협조 어려울수도…북핵해결 美집중력 분산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 전선이 중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이 문제가 북핵 해결 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INF는 핵탄두 장착용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걸 골자로 냉전 시대 미국과 러시아의 전신인 구소련 간 군비 경쟁 종식을 알리는 큰 이정표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미·러 양국이 서로 조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파기 논란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11월 6일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보수 지지층 표심을 의식한 듯 러시아가 INF를 위반했다는 주장을 부쩍 강화하면서 파기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자칫 냉전 시기의 핵무기 개발 경쟁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연일 자극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트럼프 미 대통령은 INF 당사국에 중국도 포함해야 한다고 '확전'을 시도하고 나섰으며, 이에 중국은 반발하면서 미국·러시아 문제에서 미국·러시아·중국 문제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중간선거 지원 유세를 위해 텍사스로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는 협정(INF)의 정신이나 협정 그 자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그들(중국)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INF는 미국과 소련이 달성한 양자조약 성격으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조약을 탈퇴하면서 중국을 거론하며 시비를 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반발했다.
냉전시기 핵무기 경쟁 레이스는 양 진영의 리더인 미국과 소련 간에 이뤄졌지만, 경제력을 포함한 영향력으로 볼 때 중국이 이미 G2(주요 2개국)로 부상한 만큼 중국 역시 INF 당사국이 돼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 다툼에 왜 끌어들이느냐면서 강한 거부감을 표시한다.
문제는 최소 미국·러시아 간 갈등, 더 나아가 미국·러시아·중국 갈등으로 확산할 경우 올해 들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동력으로 한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협상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는 점이다.INF 파기 논란이 지속하면 무엇보다 북한 비핵화라는 '대의명분'이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내에서 '공인' 핵보유국인 미국·러시아·중국과 NPT를 박차고 나가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 간에는 현격한 간극이 존재하지만, 미국의 INF 파기 행보는 북한에 '이중잣대' 적용으로 비칠 수 있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이 핵무기 경쟁 레이스에 돌입하겠다는 의도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제사회에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북한이 기존 입장을 뒤집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적어도 북한이 '핵 군축' 논리로 맞설 빌미를 주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24일 "북한이 강대국 간의 사안인 이 문제를 가지고 미국을 흔들려 하지는 않을 것이며, 협상장에서 '카드화'할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은 물론 미국의 대외 현안에서 북핵 문제의 순위가 하락할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미 행정부 내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INF 갈등이 커지면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진행 중인 북미 대화 과정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또 INF 문제가 커지면 미 행정부의 우선순위 안건에서 북핵이 차지하는 비중이 내려감으로써 '천천히 해결해도 되는 문제'로 간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INF 파기 드라이브가 대북압박의 메시지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군사 측면에서 자국 중심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 기조를 행동으로 보여왔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북미협상이 결렬될 경우 힘으로 압박할 여지가 있는 정부라고 북한이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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