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 대폭 확장 伊 예산안, '국가채무 건전관리' EU 원칙 위배
살비니 伊부총리 "EU 거부 불구 예산안 고수할 것"
EU가 특정 회원국 예산안 거부한 첫 사례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재정 지출을 대폭 확대한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 퇴짜를 놨다.
EU 집행위원회는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거부하고, 3주 안으로 수정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EU가 특정 회원국의 예산안을 거부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하며 "이탈리아 정부에 수정 예산안 제출을 요구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EU의 이 같은 조치는 이미 널리 예상돼 온 것이다. EU는 내년 예산의 재정적자규모를 전임 정부의 약속보다 3배가 많은 국내총생산(GDP)의 2.4%로 설정한 이탈리아 예산안은 국가채무의 건전한 관리를 규정한 EU의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EU는 회원국의 재정안정성과 적정한 공공부채 유지를 위해 회원국들과 안정·성장 협약을 맺고 있다.
특정 국가의 공공부채 상한선을 GDP의 60%로 설정하고 있는 EU는 GDP의 130%가 넘는 국가부채를 안고 있는 이탈리아가 부채를 관리하지 않고, 오히려 재정확장 정책을 쓸 경우 그리스식 채무 위기가 닥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전체로 위기가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설정한 GDP의 2.4%의 내년 재정적자 규모는 EU가 정한 상한선인 3.0%에는 미달하지만, GDP의 1.6%에 머문 올해 재정적자 규모보다도 상당히 늘어난 것이다. EU는 공공부채 감축 약속을 어긴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을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해왔다.
EU는 또한 이탈리아 정부의 예산안이 근거 없이 너무 낙관적인 경제 성장 전망을 담고 있다고도 지적해 왔다.
EU로부터 예산안에 대해 퇴짜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정부의 실세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이탈리아는 당초 예산안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해 예산안을 둘러싼 양측의 충돌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EU의 거부는 아무것도 바꿔놓을 수 없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EU는 우리 국민을 공격하고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이번 결정으로 더 화가 날 것이고, EU의 인기는 이탈리아에서 최저치로 떨어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편,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역시 내년 예산안을 거부한 EU의 발표에 앞서 블룸버그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예산안과 관련한)'플랜 B'가 존재하지 않는다. GDP의 2.4%의 재정적자는 우리가 설정한 최소한도"라고 말해 EU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예산안을 수정할 의향이 없음을 분명히 해 귀추가 주목된다.
콘테 총리는 "이탈리아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하는 노름꾼이 아니다"라며 "경제 성장이야말로 '빚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빈곤층에 월 78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 제공, 감세, 연금수령 연령 하향 등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값비싼 선거 공약을 현실화하기 위해 확장 예산안을 제출한 이탈리아 정부는 재정지출이 늘어나면 소비와 투자 증가로 이어져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GDP 대비 국가부채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콘테 총리는 아울러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끄는 정부가 이탈리아의 EU와 유로존 탈퇴를 결코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다시 한 번 역설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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