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스티븐 연 "韓영화계 풍부…할리우드 고집할 필요없어"

입력 2018-10-24 08:01   수정 2018-10-24 08:25

'버닝' 스티븐 연 "韓영화계 풍부…할리우드 고집할 필요없어"
'워킹데드'로 알려진 교포배우…"이창동·봉준호 감독과 작업한 건 영광"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한국 영화계에 풍부하고 생생한 작품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여기(할리우드) 와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내년 제71회 아카데미영화상(오스카) 외국어영화 부문의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된 '버닝'에서 미스터리 인물 '벤' 역으로 열연한 한국계 미국배우 스티븐 연(34)이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한국 배우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스티븐 연은 2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시내 LA한국문화원에서 '버닝'의 이창동 감독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통해 '버닝' 제작에 얽힌 뒷얘기를 털어놨다.
5살 때 캐나다로 이민 와서 미국으로 이주한 뒤 심리학(신경과학)을 전공했지만 배우의 길을 선택한 그는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 미국 TV 시리즈 '워킹데드'의 글렌 리 역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도 출연했다.
스티븐은 "봉준호, 이창동 감독님과 작업하게 된 건 영광이었다"면서 "'옥자'에서는 한인교포 역할을 맡았는데 제삼자 입장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님과 함께한 '버닝'에서는 온전한 한국인을 연기할 수 있었고 일상적인 (한국)문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버닝'은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기회였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마리화나 피우는 장면과 벤의 파티가 있기 전 종수(유아인)와 마주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2시간 동안 이 감독님, 유아인 씨와 얘기를 나눴는데, 모든 것이 머릿속에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영화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면 되는지 깨달았다"라고 돌이켜봤다.
그에게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한국 배우들에게 한 마디 조언해달라고 하자 "한국 영화계가 이처럼 풍부하고 생생한 작품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할리우드에 올 필요가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좋은 작품을 찾아서 하면 할리우드에서 작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세계적으로 통할 것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한국영화계에 진출하고 싶은 미국 교포 출신 배우들에게는 "언어가 어려운 지점이 되겠지만 그보다 앞서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스티븐 연은 '버닝'의 의미에 대해 "태운다는 건 여러 의미를 갖는다. 특히 각 캐릭터가 다른 대상을 보며 느끼는 욕망을 뜻한다. 혜미(전종서)는 사라지고 싶은 욕망이 있고, 종수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벤은 무언가를 느끼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각 캐릭터가 자기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고 싶어하는 욕망을 봤다. 또한 스스로를 파괴하는 욕망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애초 스티븐 연은 '버닝'의 벤 역에 캐스팅된 게 아니었다고 이창동 감독은 털어놨다.
원작자인 무라카미 하루키 측과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제작 일정이 늦어지다 보니 원래 점찍어둔 배우가 다른 작품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그때 오정미 작가가 추천해서 스티븐 연이라는 배우를 봤는데 처음엔 '필'이 오지 않았다고 이 감독은 전했다.
그런데 스티븐을 자꾸 보면서 무명배우가 갑자기 돈, 힘이 생기면서 느끼는 존재론적 위기감, 그런 공허감을 직접 경험해봐서 몸으로 아는 듯한 '포스'가 풍기더라는 것이다.
이 감독은 "그때, 아 여기서 벤을 보는구나 싶었고 결국 스티븐을 캐스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옥자'의 봉준호 감독도 중간에 다리를 놨다고 한다.

oakchu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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