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시설 이대로 안된다] ②고양이에 생선을…돈벌이에만 눈독

입력 2018-10-25 05:00   수정 2018-10-25 06:30

[돌봄시설 이대로 안된다] ②고양이에 생선을…돈벌이에만 눈독
사립 유치원에 원생 ¾…어린이집·요양원 10곳 중 8곳 이상 개인 운영
무분별 확대에 '사업자' 양산…권리금 주고받고 거래까지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고유선 기자 = #. 지난 6월 말 서울 소재 A 어린이집 대표 B씨와 원장 C씨가 검찰에 기소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 어린이집에 대한 비리를 접수하고 수사기관에 넘겨 조사한 결과, 이들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정부 보조금 1억1천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B씨는 아들과 며느리까지 보육교사로 허위 등록해 급여를 지급했다. 여기에다 보육교사들의 근무 시간을 부풀려 보조금을 타낸 다음 이를 다시 보육교사들한테서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가로챘다. 원장 C씨도 딸을 어린이집 원생으로 정식 등록하지 않은 채 1년여간 무상으로 방과후교실에서 보육을 받게 했다.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일,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지 않고, 개인 영리 사업자에게 맡겨놓으면 어떤 결과를 빚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리 사례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아이 돌봄, 노인 돌봄, 장애인 돌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가정에서 무보수로 떠안았다.
하지만 대가족에서 소가족, 핵가족으로 바뀌는 등 가구 형태와 가족 가치관이 계속 변화하면서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한국은 보육과 요양 등 필요한 사회 돌봄서비스를 국가가 떠맡기보다는 자격 기준을 완화해 민간참여를 유도하고 인력을 단기양성하는 편법으로 해결해왔다.
그렇다 보니,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은 단기간에 민간 개인사업자 위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증가한 유치원, 어린이집, 노인 장기요양기관 등은 대부분 제대로 된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사실상 개인사업자의 사유재산처럼 운영돼 왔다.
참여연대는 "이런 사정으로 많은 민간 서비스제공자들은 비용을 최소화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서비스의 질은 저하하고 종사자들의 노동조건과 처우는 악화해 아동과 노인, 장애인이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 유치원 늘리려고 사립 자격요건 완화…30여 년 곪은 제도적 허점
유아교육법은 만 3살부터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의 어린이를 유아로 보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호자와 함께 유아교육을 책임진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까지도 유아교육의 상당 부분을 사립유치원에 의존해 왔다.
부유층의 전유물인 '조기교육'으로 여겨졌던 유치원 교육이 활성화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정부는 1982년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을 세우고 그 해 14.7%에 불과했던 유치원 취원율을 1986년까지 38% 선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벨기에·스페인·아일랜드 등 유럽 국가의 취원율이 80%를 웃도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취원율을 올리고자 내놓은 처방이 바로 사립유치원 확대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종교단체나 학원 등이 운영하던 무인가 유치원이 전국에 2천 개가량이었는데, 이를 양성화하는 과정에서 시설조건 등을 대폭 완화했다.
당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등 국공립유치원은 이때부터 사립유치원이 별로 없는 중소도시와 농어촌을 중심으로 확장했다. 결국, 1990년대 들어 유치원 수는 전국에 4천 개가량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77%가 무자격 원장을 두고 운영되는 등 문제점이 지적되자 정부는 1993년 다시 관련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 유치원 운영경력이 5년 이상이면 사립유치원 원장이 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미인가 사립유치원을 양성화하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자격 기준을 풀어버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영세한 규모의 유치원이나, '교육기관'보다 '사업체'에 가까운 유치원을 양산한 셈이다.
사립유치원은 대부분 초등학교의 남는 교실을 사용하는 국공립유치원보다 규모가 크다.
지난해 전국 유치원 9천29곳 가운데 국공립은 4천747곳(52.6%), 사립은 4천282곳(47.4%)으로 절반씩 차지하지만, 원아 수를 보면 전체 69만4천631명 가운데 사립유치원생이 52만2천110명(75.2%)으로 국공립 17만2천521명(24.8%)의 3배에 이른다.
이렇게 되자 정부가 국공립유치원을 확대하려 해도 기존 사립유치원의 반대에 밀려 도심에는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 아이들 머릿수가 돈벌이 대상…권리금 주고 어린이집 매매도
어린이집 상황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 보육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어린이집 4만238곳 중에서 개인 운영 어린이집이 3만3천701곳으로 83.75%를 차지한다.
국공립은 3천157곳으로 7.84%에 불과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주체인 국공립어린이집마저도 사실상 개인의 소유, 개인 운영과 다름없는 '무늬만' 국공립인 경우가 많다. 민간에 위탁했기 때문이다. 국공립의 55%가 개인 원장에게 위탁됐으며, 심지어 10년 이상 위탁받아 운영하는 원장이 35%에 달한다.
이렇게 민간이 압도하다 보니, 권리금을 주고 어린이집을 사고파는 일이 허다하다. 아이들 머릿수 하나하나를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육아정책연구소의 '2015년 전국보육실태조사-어린이집 조사 보고서'를 보면, 민간·가정어린이집 2천623곳(민간어린이집 1천139곳, 가정어린이집 1천484곳)의 28.5%가 개설할 때 권리금을 지불했다.
시설유형별로는 가정어린이집 32.5%, 민간어린이집 23.2%가 권리금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민간·가정어린이집의 권리금은 평균 5천600만원이었다. 시설유형별로는 민간어린이집이 8천958만원이고, 가정어린이집이 3천773만원이었다.
대체로 어린이집 규모가 클수록 권리금도 많았다. 정원 20명 이하의 어린이집 권리금은 평균 3천774만원에 그쳤지만, 21∼39명의 어린이집은 평균 6천569만원, 40∼79명의 어린이집은 평균 9천만원 등이었으며, 80명 이상 어린이집은 평균 1억6천407만원의 권리금을 지불했다.

어린이집은 규모가 대체로 영세해서 종사자 5인 미만이 절반 이상이다.
그렇다 보니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아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들은 보육교사들대로 숨죽이며 지낼 수밖에 없는 열악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사 대 아동 비율을 지키지 않아 아동학대가 벌어져도, 원장의 비리를 목격해도 해고될까 봐, 취업을 방해하는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봐 눈을 감아야 하는 참담한 상황에 놓여있다.
문재인 정부는 '보육·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방안'으로 부모가 선호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을 대폭 확충해 '이용률 40%'를 달성하는 것을 국정 과제로 내세웠지만, 속도를 내지 않는 한 임기 내 목표를 이루는 게 녹록지 않다.
정부는 2017년 373개소를 시작으로 2022년까지 매년 450개소 이상의 국공립어린이집을 확충하기로 했다.
그러면 국공립어린이집은 2017년 3천157개소, 2018년 3천607개소, 2019년 4천57개소, 2020년 4천507개소, 2021년 4천957개소, 2022년 5천407개소 등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이런 계획대로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리더라도 이용률은 2017년 12.9%에서 2018년 15.4%, 2019년 18.3%, 2020년 21.1%, 2021년 24.2% 등에 이어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에도 27.5% 정도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해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등 23개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보육더하기인권함께하기'는 최근 성명을 내고 "유치원, 어린이집 비리를 근절하려면 근복 대책이 필요하며, 그러려면 지자체와 교육청은 보육과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등 책임 있는 자세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민간 노인요양시설은 비리 온상"
노인 장기요양기관도 비슷한 사정이다.
건강보험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를 보면, 2017년 기준 전체 노인장기 요양기관(재가 및 시설) 2만377곳 중에서 국공립시설은 207곳으로 겨우 1.01%에 그쳤다. 개인 운영이 1만6천375곳으로 80.3%나 됐다.
이들 민간 요양시설은 유치원-어린이집 비리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는 게 요양서비스 종사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올해 5월 개인과 법인, 지자체가 운영하는 전국 320개 요양시설을 현지 조사해보니, 조사 대상의 94.4%인 302곳에서 인력배치 기준위반, 허위청구, 급여지급 기준위반 등의 부당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부당청구 금액은 63억원에 달했다.
이에 대해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는 노인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후퇴를 거듭하면서 용두사미가 됐다"면서 "민간중심의 노인요양 공급체계를 깨고 공공 요양시설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h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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