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양승태 사법부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종반으로 향하면서 향후 이 사건을 심리할 재판부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사법 농단' 의혹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에는 다수의 전·현직 고위 법관이 피의자나 피해자 등 당사자로 연루돼 있다. 따라서 사건 수사가 마무리되고 그 결과가 법원으로 넘어갈 때를 대비해 공정한 재판부를 구성하는 문제가 중대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총무는 23일 "사법 농단 연루자에게 관련 재판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것'"이라며 "사법 농단과 관련 없는 법관들로 구성된 특별재판부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번 의혹과 관련해 특별재판부 도입 입장을 공식적으로 피력한 정당은 민주당이 처음이다. 사법부의 '제 식구 감싸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여당의 방침은 야당인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의 동조를 얻으면서 힘을 얻는 양상이다. 애초 적극적 자정 노력과 수사 협조를 다짐한 김명수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의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검찰 수사의 편파성 등을 이유로 특별재판부 설치에 반대하고 있다. 사법부도 아직 공식 의견을 내놓지는 않지만,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고 한다. 최완주 서울고법원장이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특별재판부 도입에 대한 개인 의견을 묻는 한 여당 의원의 질문에 "위헌 논란이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것은 한 예다. 사법부가 자신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특별재판부를 선뜻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법조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특별재판부가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을 본질에서 침해할 수 있어 위헌이란 주장도 있다.
국회의원 개인으로는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지난 8월 제출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기간 중의 사법 농단 의혹 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 절차에 관한 법률안'에서 대한변협 3명·법원 판사회의 3명·시민사회 3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 특별재판부 후보 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특별법관 각 3명을 대법원장이 임명해 1·2심을 맡게 하고, 특별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국회 일정으로 볼 때 국정감사가 끝나는 이달 말쯤 특별재판부 문제에 대한 국회의 논의가 활발히 전개될 전망이다.
검찰의 사법 농단 의혹 수사는 사건에서 '키맨' 역할을 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23일 청구됨으로써 중대 기로를 맞고 있다. 법원의 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으로 향하는 막판 수사의 동력이 기로를 맞겠지만, 최소한 수명의 법관은 기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곧 재판을 맡을 사법부는 공정성 시비가 일지 않을 재판부 구성 방안 마련에 진력해야 한다. 특히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됐거나 이념적으로 편향성이 있는 법관은 제척하는 게 마땅하다. 사법부가 결자해지 차원의 적극적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특별재판부 설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정치권도 특별재판부 도입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하되 당리당략은 배제하고 국민이 공감할 공정한 재판부를 구성하는 데 역점을 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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