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사건에 美 '이란 악마화' 전략 차질…목소리 내는 이란

입력 2018-10-24 18:59  

카슈끄지 사건에 美 '이란 악마화' 전략 차질…목소리 내는 이란
사우디 왕실의 폭력적 이면 드러나…미·사우디 공동전선 정당성 상실 위기
이란 사법부 수장, 카슈끄지 사건 발생 20일만에 사우디 왕실 공격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예기치 않게 터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줄기차게 밀어붙였던 '이란 악마화'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성사했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자신의 선거 공약대로 올해 5월 탈퇴하고 8월에 이어 11월 강력한 제재를 복원한다.
핵합의로 완화된 대이란 제재를 더 강력한 수준으로 재개하는 셈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이 핵합의에서 약속한 핵프로그램 감축·동결을 지켰다고 지난 2년 반 동안 분기마다 확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이란이 핵합의를 몰래 어겼다는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서도 '이란이라서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이란 정권을 국민을 탄압하고 부패했으며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없어져야 할 강경한 이슬람 정권으로 규정했다.
이란 정권은 미국을 '사탄'(악마)이라고 칭하는 데 트럼프 대통령의 언사를 들어보면 그 역시 이란을 악마화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극단적으로 강경한 대이란 전략은 이란의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에서 양국을 밀착시키는 접착제나 다름없었다.
2015년 1월 살만 국왕 즉위 뒤 30대 초반에 불과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사실상 최고 권력자로 급부상하면서 내부 경쟁 세력의 불만과 반동을 잠재우기 위해 이란과 같은 외부의 강력한 공적이 필요했다.
중동을 선과 악으로 이분해 공적으로 삼은 이란을 사우디와 연대해 고사시키려는 이런 미국의 전략은 카슈끄지 사건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사우디가 완강히 부인하는 데도 카슈끄지를 잔인하게 계획적으로 암살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사우디 왕정이 이란 못지않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단계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 정권을 '살인적인 독재자'라고 불렀는데, 현재 분위기로선 대상을 사우디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은 모양새가 돼 버렸다.
이란을 악마화하면서 도덕적인 우위를 점해 압박하던 미국과 사우디의 대이란 공동 전선이 정당성을 상실하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사우디 정부에 대해 "카슈끄지 사건을 은폐한 것은 사상 최악의 일"이라고 맹공하면서 이란을 끌어들여 "그들의 인권유린이 국제 사회의 형편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가 중동에서 선명하게 선을 그었던 선악의 경계가 희미해졌음을 사실상 자인한 셈이다.

이번 카슈끄지 사건으로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도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예멘은 3년 반 동안 계속되는 내전으로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했지만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하는 미국과 유럽의 '묵인'과 서방 매체의 압도적인 여론 주도력으로 사우디보다는 예멘 반군을 옹호하는 이란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부각됐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사우디 왕실의 폭력적 이면이 드러나면서 예멘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사우디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비로소 고개를 드는 흐름이 감지된다.
이런 전세 역전을 놓치지 않은 이란도 카슈끄지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건 초기 이란은 경쟁국 사우디가 구석에 몰리는 이 사건을 관망하는 태도였다.
카슈끄지가 사우디 왕실뿐 아니라 이란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인 언론인이었던 데다 이란 역시 언론 탄압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태가 무함마드 왕세자의 폐위까지 거론되는 정도로 사우디가 수세에 몰리자 이란의 고위 인사들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의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해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란 사법부 수장 사데그 아몰리 라리자니는 22일 "사우디는 처음엔 이 범죄(카슈끄지 살해)를 서방의 비호 아래 덮으려 했으나 실패했다"며 "사우디는 자신의 부패 통치를 표백하려 했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라리자니의 언급은 카슈끄지가 죽은 2일 이후 이란 공직자에게서 나온 첫 공개 비판이다.
그는 이어 "종교적 믿음이 부족한 사우디 왕실이 카슈끄지를 비롯한 많은 이를 잔인하게 죽였다"며 "사우디는 예멘에서도 서방 강대국들의 지원 속에 범죄를 저지르고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23일 "카슈끄지 살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응은 늦었지만 강력하다"며 "사우디 왕실에 대한 미국의 지원 탓에 사우디가 점점 범죄를 저지르고 중동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의회 의원 모하마드 알리푸르 모그타르도 "미국의 노예이자 트럼프에게 쉴 새 없이 지원받는 사우디 왕실이 카슈끄지를 죽였다"며 "미국이 (이란을 향해) 주장했던 인권 문제가 이번 사건으로 허언이 됐다"고 비판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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