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공원 핑크뮬리 정원 가보니…방문객 쇄도, 셀카 삼매경
"예쁘고 몽환적" vs "외래종 심어야 하나" 시각 엇갈려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우와∼ 진짜 솜사탕 같다. 사진부터 찍자."
뭉게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던 지난 25일 오후 울산시 남구 울산대공원 동문.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줄을 지어 대공원 안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한 손에 '셀카봉'을 든 젊은 연인부터 디지털카메라를 챙겨 든 청년,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엄마, 나들이 나온 어린이집 원아들까지 수십명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한 곳으로 향했다.
이들을 따라 잎이 조금씩 붉어진 나무 사잇길로 400m가량 올라가다 보니 야외공연장 뒤쪽 언덕에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거대한 핑크 물결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저게 핑크뮬리구나"하고 말하자 사람들 발걸음이 빨라졌다.
◇ 너도나도 셀카 삼매경…'인생사진 찍자'며 훼손도
언덕 위로 올라서자 사람 허리 위까지 자란 핑크뮬리 4만3천 포기(2천㎡ 규모)가 무리 지어 핀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평일인데도 정원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방문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부터 찍기 시작했다. 일행끼리 쭉 늘어서 한명씩 셀카를 찍은 다음 서로 찍어주기도 했다.
두 주먹을 볼에 갖다 대고 포즈를 잡은 친구를 찍어주는 20대, 어린 딸을 한쪽 팔로 품에 안고 다른 쪽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는 아빠까지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기에 바빴다.
"얼굴을 좀 더 내려봐", "좀 더 왼쪽으로 가봐" 하며 사진이 더 잘 나올 수 있게 알려주기도 했다.
배경이 좋은 곳에선 이따금 "죄송합니다. 조금만 옆으로 비켜주세요"라며 서로 사진찍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약한 승강이를 벌이는 소리도 들렸다.
일부 방문객은 아예 핑크뮬리밭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줄을 쳐놓았지만, 넘어가 자리를 잡았다.
정원을 관리하는 울산시설공단 직원이 다가가 "들어가시면 안 되네요"라고 주의를 주자 멋쩍은 듯 다시 빠져나왔다.
자주 이런 일이 생기는지 정원 곳곳에는 1㎡ 정도씩 동그랗게 핑크뮬리가 쓰러져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직원은 "대부분 미안해하며 곧바로 나오지만, 나오지 않으려고 짜증을 내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 이색적이고 신비로워…SNS 열풍도 한몫
"예쁘잖아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도 딱 좋고요."
핑크뮬리 열풍에는 SNS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핑크뮬리 정원을 찾은 직장인 김정아(29) 씨는 사진을 찍자마자 잘 나왔는지 함께 온 동료에게 보여 줬다.
동료가 "오, 괜찮네∼"라고 하자 김씨는 스마트폰으로 SNS에 접속해 사진을 올렸다.
그는 "예쁜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면 반응이 좋은 댓글을 많이 달려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대학생 함혜진(22) 씨는 "다른 친구들이 SNS 올린 것을 보고 이곳에 핑크뮬리가 있는 걸 알게 됐다"며 "너무 예쁘게 보여서 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옆에 있던 친구 정인희 씨는 "한마디로 '인생사진' 찍으러 왔다"며 "지금이 아니면 핑크뮬리를 찍을 수도 없다"고 웃어 보였다.
핑크뮬리가 품은 이색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찾는 사람도 많다.
사진을 찍다가 의자에 앉아 잠시 쉬던 정필용(64) 씨 부부는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참 예쁘다"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도 좋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대여섯번 핑크뮬리 정원에 왔었다는 김경애(52) 씨는 "인생을 생각하면 팍팍한데 핑크뮬리를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는 것 같다"며 "핑크빛 안개 속에 있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 핑크뮬리 원산지 몰라…'꼭 외래식물 심어야 하나' 시각도
열풍이라 불릴 정도로 핑크뮬리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이 식물을 잘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핑크뮬리는 미국이 원산지로 '뮬리'는 처음 이 식물을 발견한 사람 이름에서 따왔다.
우리말 공식 이름은 털쥐꼬리새, 분홍억새, 서양억새 등이며 벼목 벼과 쥐꼬리새속에 속하는 식물이다.
한 커플에게 핑크뮬리 원산지를 물었더니 "미국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여자친구가 말하자, 옆에 있던 남자친구는 "프랑스 아니야? 뭔가 프랑스 느낌이 나는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산지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낯선 외래 품종을 굳이 곳곳에 심어야 하냐는 의견도 있다.
박해경(59) 씨는 "외래종이면 심을 때마다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아름다운 품종을 개발해 이렇게 심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시설공단 관계자는 "외래종을 경쟁하듯 심어 놓으니 다소 거북하다는 전화가 온 적이 있다"며 "하지만 핑크뮬리가 가을 식물 중에선 드물게 11월까지 꽃을 피우다 보니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울산대공원 핑크뮬리 정원은 지난 2일 개장한 이후 평일에는 2천여명, 주말에는 1만명가량이 방문하고 있다.
can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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