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이달 2일 사망한 뒤 처음으로 24일(현지시간) 대중 앞에서 이를 직접 언급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시종 여유로운 듯 보였다.
그는 이날 미래투자이니셔티브의 마지막 순서인 '신세기의 부상:비전있는 리더가 어떻게 아랍을 경제 열강으로 바꿀 수 있나'라는 주제의 패널 토의에 토론자로 나왔다.
예정 시각인 오후 5시 30분이 되자 수행원을 거느리고 행사장인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 대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중 대부분이 일어나 그를 스마트폰에 담기 바빴다. 사우디의 개혁을 이끄는 젊은 계몽 군주의 얼굴에 왕실을 비판하는 언론인을 잔혹하게 죽이라고 지시한 장본인의 모습이 투사됐을 터다.
블룸버그는 행사 분위기에 대해 "여러 유명인이 나와 연설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카슈끄지 사건의 속보를 보려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전했다.
키가 183㎝로 체구가 큰 편인 그는 만면에 웃음을 짓고 당당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의 옆에는 세계적 유명인사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군주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 앉았다.
셰이크 무함마드와 10분 정도 웃으며 담소를 나누다 무대에 올라 맨 오른쪽 의자에 앉은 그는 거침이 없었다.
생중계 화면을 보면 예상을 깨고 사회자가 첫 질문으로 현재 그에게 가장 난처한 이름인 카슈끄지를 언급하자 장내가 잠시 술렁이는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정치적 생명까지 위협하는 사안인 만큼 전 세계의 이목이 그의 입에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긴장된 침묵이 잠시 흐른 뒤 무함마드 왕세자는 "카슈끄지 살해는 추악하고 악랄한 일이며 모든 사우디인과 전 인류에게 애석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개된 정황이 모두 자신을 배후로 지목하는 데도 전 세계로 생중계된 자리에서 마치 평론가처럼 이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범인들을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세워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강조해 자신이 사건의 유력한 배후가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고 단죄하는 권력자임을 과시했다.
카슈끄지의 살해를 언급했을 때는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약 40분간 진행된 토론에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또 그의 옆에 앉은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에 대해 민감할 수도 있는 사안을 소재로 농담도 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하리리 총리를 가리키며 "하리리 총리가 앞으로 이틀간 더 사우디에 머물 예정인데 그가 납치됐다는 소문이 안 났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농담'에 하리리 총리는 손을 들어 "나 지금 여기 있다"고 답했고 관중들은 박장대소했다.
하리리 총리는 지난해 11월 사우디를 방문해 사우디 국영방송을 통해 이란의 내정간섭과 헤즈볼라의 암살 위협을 이유로 돌연 총리직 사퇴를 발표했다.
이를 두고 당시 무함마드 왕세자가 레바논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이란과 헤즈볼라에 단호치 못한 그를 납치, 감금한 뒤 사퇴를 종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자신이 배후로 지목됐던 하리리 납치설을 먼저 꺼내 들면서 카슈끄지 사건을 두고 언론과 국제 사회가 제기하는 자신에 대한 의혹도 근거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그러면서 "나는 중동이 '글로벌 리더', 새로운 유럽이 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생을 끝낼 수 없다"는 중동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사뭇 비장하게 강조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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