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난민 정서 고조 우려…살비니 부총리 "'벌레들' 죗값 치르게 할 것"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로마 시내 한복판에서 16세 소녀가 불법 이민자들에 의해 마약을 복용하고 집단 강간당한 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해 이탈리아가 발칵 뒤집혔다.
데시레 마리오티니라는 이름의 피해자는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대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로마의 대표적 유흥가인 산 로렌초의 한 버려진 건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 당국이 시신을 부검한 결과 체내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이탈리아 경찰은 마리오티니가 마약 성분이 든 칵테일을 몇몇 용의자로부터 받아마시고 마약 과다 복용으로 수 시간 동안 혼미한 의식상태로 있다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26세와 43세의 세네갈 출신 불법 체류자와 나이지리아 출신 40세 남성 1명을 용의자로 체포했다고 ANSA통신이 25일 전했다.
경찰은 이들 외에도 이탈리아인 2명을 포함한 3명의 용의자가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부모가 이혼한 뒤 할머니와 생활을 해왔던 마리오티니는 휴대전화를 받는 조건으로 마약을 팔아왔고, 사건 당일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마약 밀매업자를 찾아갔다고 친구들이 전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날 언론에 "딸을 위한 정의를 원한다. 이런 비극이 다른 소녀들에게는 일어나선 안 될 것"이라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처벌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소녀의 시신이 발견된 건물 주변의 외벽에 '데시레를 위한 정의', '산 로렌초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 등의 문구를 적고, 꽃을 헌화하며 추모와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들로 불법 이주민들이 지목되자 당국의 이민자 관리 실태가 재조명되는 동시에, 최근 팽배한 반(反)난민 정서도 더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세네갈 출신 26세의 용의자는 작년에 추방 명령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 취임 이래 강경 난민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용의자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벌레들'이라고 부르며 혹독한 단죄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밤 2명이 체포되고, 다른 2명이 수배 조치됐다"며 "이 끔찍한 사건에 책임이 있는 '벌레'들이 죗값을 충분히 치를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전날 사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됐다"며 "범죄를 저지른 '괴물들'이 곧 잡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현장 방문에서 지지자들에게서 박수를 받는 한편 난민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난하는 반대자들로부터 야유를 동시에 받기도 했다.
시내 곳곳에 방치된 건물을 난민이나 부랑자들이 무단 점거해 골치를 앓고 있는 로마시도 급기야 이런 건물 가운데 1곳에서 흉악 범죄까지 발생하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치안 강화를 위해 로마에 경찰 인원을 더 늘려줄 것을 중앙 정부에 요청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2월에도 10대 소녀 1명이 동부 마체라타에서 나이지리아 불법 이민자에게 약물 중독 상태에서 강간·살해당한 뒤 토막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이탈리아의 20대 극우 청년이 소녀의 죽음에 복수를 하겠다며 마체라타 시내에서 흑인들만을 겨냥해 조준 사격을 가해 사건과 무관한 이민자 5명이 다친 바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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