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카스텐에선 내 목소리도 부품"…첫 솔로앨범 '이타카'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국카스텐에선 제 보컬마저도 밴드 음악을 이루는 부품이라 여기고 작업합니다. 정서적으로 지치고 정체된 면이 없지 않았는데, 솔로 앨범을 내니 치유되는 기분입니다."
26일 오후 3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뮤즈라이브홀에서 열린 음악감상회에서 국카스텐 보컬 하현우(37)는 첫 솔로앨범 '이타카'(Ithaca)를 만들면서 위안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하현우는 올해 tvN 음악예능 '이타카로 가는길'을 통해 그리스 섬 이타카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콘스탄틴 카바피의 시 '이타카'를 접하고는 '가슴 속에 이타카를 품어라'는 구절을 가슴팍에 문신으로 새겼다.
그는 "예전부터 솔로 앨범을 꿈꿨지만 기회가 없었다. '이타카로 가는 길'을 통해 이상적인 곳에 다녀왔으니,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솔로 앨범을 낼지 기약이 없겠더라"며 "일단 물꼬를 터야 한단 생각에 앨범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작업은 제게 일종의 정화작용이었다. 밴드 때와 전혀 다른 형식으로 만들다 보니 생동감을 느꼈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샘솟았다"며 "그게 국카스텐 음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홈'(Home), '항가'(巷歌), '무지개 소년'과 두 가지 버전 연주곡 '이타카'까지 총 5곡이 담겼다.
'홈'은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담았다. '언제나 기다리는, 모두 치유해주는, 다시 가야 하는 홈'이라는 내레이션이 마치 기도처럼 들린다. 하현우는 "사람은 낯선 공간에서 자신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집과 가장 멀어지지만 자신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는 게 여행"이라고 말했다.
'항가'는 오랫동안 품속에 지니고 있던, 나에게 쓴 편지를 꺼내 들고 거리로 나아가 부르는 노래다. 편지를 부침으로써 스스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상기하는 것이다.
하현우는 실제로 인생에서 의미 있는 편지를 부친 적이 있다. 대학교 1학년이던 2000년, 훗날 국카스텐 드러머가 될 이정길과 우연히 조우한 일이 시작이었다.
"길을 걸어가는데 스쿨밴드에서 드럼 치는 애가 '혹시 음악 좋아하냐, 나랑 같이하자'고 하더라고요. 해보니 음악이 너무 재미있는데, 제대로 안 돼서 답답했어요. 선배들이 자꾸 술 먹이고 벌을 세우니까요. 그래서 밴드부를 그만두고 자퇴하고 서울 가서 제대로 하자 싶었죠. 선배들에게 편지를 써서 서클방 앞에 붙여두고 도망 왔어요."
이밖에 연주곡 '이타카' 기타 버전은 기타리스트 정성하 손에서 탄생했다. '무지개 소년'에는 개그맨 김준현이 하모니카 연주로 참여했다. 하현우는 "'무지개 소년'은 비가 그치기도 전에 무지개를 맞이하러 나온 소년들이 환호성 지르며 뛰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앨범에는 국카스텐 음악을 지배하는 분노와 패배주의보다 한결 긍정적인 정서가 묻어난다. 2007년 1집을 낸 국카스텐은 지난 2014년 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기 전까지만 해도 밥벌이의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국카스텐 초반에만 해도 저희는 스스로 불량품이라 생각했어요. 세상에 나와선 안 될 존재가 나왔다고 생각했죠. 어릴 때 배운 세상과 직접 경험한 세상이 너무 달랐어요. 내 또래들은 다 여행가고 데이트하는데 나는 왜 항상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먼지를 마셔야 하나 싶었죠. 합주하면서 세상 다 부숴버리자 이런 얘길 많이 했어요. 세상이 우릴 알아봐 주지 않는 것 같고, 너무 불평등해 보였고…."
하지만 녹록지 않은 지난 시절은 이들의 음악 자양분이기도 했다.
그는 "세월이 지나다 보니 그게 특별한 경험이었더라. 지금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잘 이겨내게 하는 훈련이었다"며 "20대 때 몰아서 방황한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근 국카스텐은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문화예술인에게 수여하는 정부포상인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하현우는 "저희가 나라에서 주는 상을 받을 만큼 대단한 뮤지션이라곤 절대 생각지 않는다"며 "이 상의 가치에 걸맞은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각오가 들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우리는 곡 만드는 속도도 느렸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답을 몰랐고 지혜로움도 없었기 때문에 실수와 실패가 많았다"며 "이 상이 마치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느린 속도로 온 게 결코 잘못이 아니야, 잘했어'라는 칭찬을 하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하현우는 특히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거듭 썼다.
"공연하다 보면 우리 음악을 통해 아프던 분이 병이 낫고, 정신적으로 힘들어 생을 포기하려던 분이 힘을 얻는 일을 봤어요. 불량품이라 생각한 우리가 이렇게 사회에서 쓰임 있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짧지 않은 시간 음악을 하며 느꼈습니다. 이제 자신을 쉽게 재단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막연히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음악을 합니다."
밴드 음악계 침체도 안타깝다.
하현우는 "선배님들 말씀이 1990대까지만 해도 먹고살 수 있었다더라. 우리가 시작했을 때는 굉장히 힘들었다. 언젠간 나아지겠지 했지만 계속 어려웠다"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방송계에 계신 분들이 이해타산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양한 편성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하현우는 솔로 활동과 함께 국카스텐 연말 투어 '해프닝'(HAPPENING)을 개최한다. 12월 1일 대전, 15일~16일 서울, 25일 부산에서 공연을 펼친다. 내년에는 국카스텐 3집도 본격적으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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