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자동차 등 주력산업 '흔들'…금리 인상 압박도 부담
최저임금·현대차 사옥 등 두고 내부 '불협화음' 이어져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내년에는 더 강한 외풍이, 더 지독한 가뭄이 올 것으로 보이는데 어쩌려고 이러고 있나."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지난 26일 페이스북에서 정부가 최근 내놓은 단기 맞춤형 일자리 대책에 이같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안팎으로 꽉 막힌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경제팀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며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여기엔 설상가상의 경제 상황에도 뚜렷한 성과 없이 불협화음만 커지는 경제팀의 '정책 역량'을 불신하는 시선이 자리 잡고 있다.
당·정·청 간 이견을 최소화하고 일관된 '원 보이스'로 투자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요구도 크다.
◇ '내우외환'에 흔들리는 한국경제…미래혁신은 답보만
28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됐고 일자리 지원책도 수차례 쏟아졌지만, 고용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장기간의 고용 한파는 가계소득 악화로 이어지면서 파장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급기야 지난 24일 '맞춤형 일자리'라는 명목으로 단기 일자리 대책을 내놨지만, 일자리 '분식'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정부 대책에 폐비닐 수거 등 단순 일자리가 포함돼 있어서다.
수출 효자로 꼽혔던 주력산업의 경쟁력 위기도 본격화하고 있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수조 원의 혈세가 수혈됐지만, 업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현대상선은 올해 2분기까지 13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정부는 현대상선에 연말까지 8천억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을 이끄는 현대차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76%나 급감한 우울한 성적표를 받았고, 기아차도 시장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 실적을 내놨다.
금리 인상 압박에 대한 부담, 미·중 무역갈등 등 대내외 불확실성까지 더하면서 지난주 국내 증시는 나흘 연속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금융위기는 급격하게 경기가 꺾이다 보니 반등할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라며 "지금은 급격한 위기는 아니지만 반등의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규제개혁은 이해관계에 막혀 제대로 된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국감에서 이에 대한 질의에 "솔직히 우리 현실이고 실력"이라며 자조 섞인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 부총리가 이끄는 경제팀의 정책 조율 역량에 날이 선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 끊이지 않는 불협화음, 갈등의 '불쏘시개'로
'경제팀 책임론'이 제기되는 이유 하나는 끊이지 않는 내부 불협화음이다. 정부와 청와대, 정부 부처 간 엇박자가 반복되면서 경제팀 수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정부와 청와대는 '불협화음'은 아니라고 부인한다. 격의 없는 활발한 토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생산적인 '이견'이라고 말한다.
시장의 시선은 다를 수 있다. 책임 있는 당국자 간 미묘한 입장 차이는 정책 '균열'로 인식돼 경제 주체들에게 작지 않은 불확실성으로 간주될 수 있다.
특히 정책 당국자의 공개적 이견 표명은 정책 갈등을 사회 갈등으로 키우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최근 국감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김 부총리의 발언이 청와대와의 이견으로 비치면서 논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고용된 근로자의 임금은 다 늘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 24일 발표한 경제활력 저하와 고용 부진 대책에서 당초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던 현대차 삼성동 사옥 조기 착공을 위한 규제 완화안이 빠진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부동산 시장 불안 등을 우려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 그 배경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낳은 것이다.
김 부총리가 올해 4월 전후로 최저임금 인상 등 일부 정책을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자주 언급하는 점도 논란 대상이다.
이는 '문제가 있다면 보완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일 뿐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반기'는 아니라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야권에 의해 '내부 갈등'으로 증폭되면서 정책 혼란을 부추기는 불쏘시개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경제팀 수장이 내부 토론에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수정·보완'이라는 표현한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 도구로 악용돼 정책 추진력을 반감시킬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느긋한 정부 전망이 위기 키워…재정확대 요구도
진보진영에서는 경제팀의 낙관적인 경제전망이 소극적 대응을 낳았다며 다른 측면에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취업자 증가 폭 전망을 32만명에서 18만명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지만 이마저도 달성이 쉬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무책임한 낙관론이 유례없는 세수 호황에도 충분한 재정 방파제를 쌓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 정책은 사실상 '긴축재정'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김 부총리가 지나치게 단기적 성과에 연연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중장기 목표를 내걸고도 월·분기 경제 지표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 4월 소득분배가 크게 악화한 가계동향 발표 당시 "경제정책은 긴 호흡이 필요하므로 단기적 성과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근본적인 경제 체질 개선의 당위를 강조한 것은 기재부가 아닌 청와대였다.
정부 안팎에서 경제팀 책임론이 고조되고 있지만, 교체 결정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정권과 무관하게 능력을 인정받아 중용된 정통 경제관료이자 경제팀 수장으로서 김 부총리의 존재감이 작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비판적인 보수진영에선 김 부총리가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신이 있는 경제관료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보상체계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외부와 적극적인 소통을 즐긴다는 점에서 경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관료라는 평가도 있다.
김 부총리의 교체가 자칫 청와대의 '일방통행 코드인사'로 해석돼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김 부총리 둘 중 어느 한쪽만 교체하면 예상치 못한 승자-패자 구도가 형성되면서 불필요한 갈등만 키울 수도 있다.
동시 교체카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폐기 내지 수정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부담된다.
아직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경제팀 교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분위기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 중심으로 일관성 있게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청와대는 참모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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