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우 비서실 홍보맨, 佛 영화한류 주역으로 변신하다

입력 2018-10-29 06:00  

[인터뷰] 대우 비서실 홍보맨, 佛 영화한류 주역으로 변신하다
배용재 파리한국영화제 집행위원장…회사 그만두고 영화가 좋아 무작정 도불
12년전 차 팔고 우표 팔아 만든 파리 한국영화제, 유럽 영화한류 중심으로
관객 대부분은 프랑스인…"우리 영화가 더 사랑받으면 바랄 게 없다"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에서도 세계적인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인기가 대단하지만, '영화 한류'의 역사는 그보다 길고 여전히 강고하다.
얼마 전에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의 프랑스 개봉을 기념해 프랑스 국립영상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이 감독의 전작을 모두 상영하는 특별전이 열렸고, 유력지 르몽드는 신문 한 면을 털어 이 감독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한복판에서 매년 가을 열리는 파리한국영화제는 프랑스에서 이런 '영화 한류'를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영화제는 오는 30일부터 일주일간 샹젤리제 거리의 멀티플렉스 상영관 퓌블리시스 시네마에서 열린다.
개막작은 '안시성'(김광식 연출), 폐막작은 '변산'(이준익 연출)으로 총 7개 부문에서 장편 37편, 단편 26편이 상영된다.
1회 관객은 500여 명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1만5천 명이 한국 영화를 보러 왔다. 관객 수만 따져도 30배나 성장한 것.
파리의 한국 유학생 영화애호가들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영화제는 지금은 세계에서 열리는 한국 영화계의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할 만큼 입지를 다졌다.
이 영화제를 처음부터 기획해 지금까지 끌고 온 주인공은 단지 영화가 좋아서 대기업 홍보실을 박차고 나와 도불한 배용재 집행위원장.
2000년대 초반 파리 3대학에서 '관객의 능동성 연구'로 영화학 박사 논문을 쓰던 그는 파리 한국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겸하면서 이론 연구와 실무를 오가다 뜻한 바 있어 영화제에 그야말로 인생을 걸었다.
평소엔 프랑스에 한국 식품을 수입하는 무역회사를 경영하지만, 파리의 한인사회와 한국의 영화계에서선 언제나 '배 위원장'으로 통한다.
초반엔 자금이 모자라 대출을 받고 애지중지하던 구한말 우표와 고서적도 경매에 내놔 자금을 마련했지만, 지금은 대기업들도 앞다퉈 후원할 만큼 기반을 다졌다.
그래도 한국영화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는 그를 제13회 파리 한국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26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에서 만나 그간의 과정을 들어봤다.

--파리 한국영화제는 국내에는 아직 생소하다. 프랑스인들이 영화제를 많이 찾나.
▲보통 한국분들이 많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관객 비율은 프랑스인 85 한국인 15 정도다. 영화제 장소인 퓌블리시스 극장은 대관료도 높고 빌리기가 쉽지 않은데 올해 초에는 먼저 계약서를 보냈더라. 극장 관계자 말로는 우리 영화제가 미국 영화제인 샹젤리제 영화제보다 더 관객이 많다고 했다. 극장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예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나.
▲많다. 우리 영화제에 오려고 매년 그 기간 휴가를 내는 프랑스인도 있다. 간호사로 일하는 남자분인데 한국영화의 대단한 애호가다. 매년 한국영화제 상영작 전편을 다 본다. 이런 분들이 적지 않다. 1회 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프랑스 노신사가 왔길래 자세히 보니 클로드 샤브롤 감독이었다. 초대한 적도 없는데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만으로 직접 찾아오신 것이어서 감격했다. 생각해봐라. 영화제를 처음 기획했는데 프랑스의 거장이 조용히 혼자 찾아와서 한국영화를 보는 것을…
(※샤브롤은 '프랑스의 히치콕'이라 불리는 영화감독으로 누벨바그의 거장으로 꼽힌다. 대표작에 '도살자' '파멸' '부정한 여인' 등이 있고 2010년 타계했다.)


--지금은 기업 후원도 받는데, 초기에는 자금난이 심각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스태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다. 오랫동안 우리 영화제를 찾는 프랑스인 중에는 자원봉사자인 것을 알고 초콜릿 등 작은 선물을 주고 가는 분들도 있다. 지금은 풍족한 편이지만 영화제 초기에는 정말 자금난이 심각했다.
유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었겠나. 초기에는 나와 후배들이 함께 차도 팔고 대출도 받고 해서 돈을 마련했다. 우표와 고서적 수집이 취미였는데 갖고 있던 구한말 희귀우표와 사진·그림 등을 경매에 팔아가면서 영화제 자금을 모았다.
--상영작은 어떻게 선정하나.
▲우리는 철저히 프랑스인들의 눈에 맞는 영화를 고르려고 한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다비드 트레들레르 역시 프랑스인이다. 회사원인데 이 친구도 무급으로 일한다. 매년 칸 영화제 등 마켓에 자비를 들여 출장을 가서 영화제에 상영할 한국영화를 직접 골라온다.
--프랑스에는 왜 왔나.
▲원래 대기업 다녔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나기 전에 대우그룹 문화홍보팀에 입사했다. 그때는 그룹 홍보팀이 회장비서실 직속이었다. IMF 사태가 터졌어도 운이 좋아 살아남아 대우 커뮤니케이션 센터, 대우차 광고팀에 근무하다가 불현듯 평소 좋아하는 영화를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파리로 건너왔다.
--영화로 박사 과정을 다니다가 그만뒀다고 들었는데.
▲박사 논문 연구 주제가 바로 관객론이었다. 영화 관객들의 능동성에 대한 연구였는데, 내가 몸담은 파리 한국영화제의 기획과도 밀접한 주제였다. 1회 때 영화제 심사위원에 학교 교수님들을 모시기도 했다.
영화제를 끌고 가다 보니 이론적 연구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실무에 '올인'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과감히 학위를 포기하고 영화제 일에 전념하고 있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영화 이론 공부나 영화제 기획이나 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 방법이니까.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우리 영화제가 계속 잘 되는 것. 나중에 내가 없어도 영화제가 잘 이어지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프랑스에서 한국영화를 체계적으로 자료화하는 라이브러리 작업도 해보고 싶다. 그냥 한국영화가 더 사랑받는다면 바랄 게 없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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