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피해 부풀리고 폭설 땐 축사 무너뜨려…수년간 23억원 '꿀꺽'
(나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전남 나주의 오리 농장주 임모(50)씨는 폭염으로 죽은 오리 사체를 치우던 어느 여름날 '꼼수만 부리면 돈 좀 벌겠다'는 유혹에 빠졌다.
임씨는 더위 탓에 죽은 오리 숫자를 부풀려서 가축재해보험금을 더 타내기로 마음먹었다.
새끼 오리를 키워서 위탁업체에 납품하는 임씨는 폭염에 폐사한 오리 숫자를 조작하고자 업체 책임자에게 은밀한 부탁을 했다.
업체는 꾸준히 거래해온 농장주의 사정 섞인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허위 서류 작성에 가담했다.
임씨는 가짜 서류로 보험금을 청구했고, 손해사정인이 현장 확인을 위해 방문하면 '악취 때문에 오리 사체는 전부 묻었다'고 둘러댔다.
거짓말은 매번 감쪽같이 통했다.
나주와 인접한 오리 산지 영암에도 임씨처럼 폭염 재해를 보험사기 수단으로 악용한 농장주 이모(44)씨가 있었다.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 똑같은 수법을 떠올린 이들은 성실한 농가가 폭염 피해로 눈물 흘릴 때 적게는 2천만원, 많게는 1억2천만원씩 허위로 보험금을 타냈다.
경찰이 파악한 이들의 보험사기 행각은 최소 2013년 여름부터 시작됐다.
이들의 사기행각은 해가 바뀌면서 더 과감해졌다.
큰 눈이 내려 시설물 피해가 우려된다는 일기예보에 다시 한 번 꿍꿍이를 꾸몄다.
지붕 위 햇볕 가림막을 거둬들이지 않고 방치해 수북이 쌓이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축사가 무너지기만을 기원했다.
눈 무게가 시원찮아 축사 기둥이 버티고 서있으면 밧줄을 걸어 당겼다.
이마저도 힘에 부치면 트랙터까지 동원해 멀쩡한 축사를 쓰러뜨렸다.
이런 사기행각 중심에는 또 다른 오리 농장주이자 축사 시공업자인 김모(59)씨가 있었다.
김씨는 때에 따라 임씨, 이씨, 자신의 농장에서 멀쩡한 축사를 부수고 새로 짓거나 고쳤다.
축사 붕괴를 악용한 사기행각은 꼼꼼한 보험사정인을 만난 2014년 겨울에는 두 차례 거듭 실패했다.
보험사를 다른 곳으로 바꾼 이듬해부터는 건당 평균 2억 6천만원의 보험금을 두 차례 연거푸 빼돌렸다.
이들에게 속은 보험사정인은 오리 농장이 서로 거리를 두고 있고, 민가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 해당 축사만 붕괴 피해를 본 것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나주경찰서는 폭염과 폭설 등 자연재해로 보험금을 챙기는 오리 농장주들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나서 이들 3명을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은 오리 농장주 부탁으로 가짜 서류를 발급한 위탁업체 임직원 2명과 일부러 무너뜨린 축사 재시공에 관여한 업자 1명도 각각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수사로 밝혀진 세 오리 농장주의 보험사기 행각은 모두 28차례다. 금액으로는 23억원에 이른다.
경찰은 비슷한 불법 행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데 재해보험금을 거짓으로 타낸 오리 농장주 12명이 추가로 적발됐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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