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조작' 원세훈 파기환송심 재판장, 내부망에 檢수사 정면 비판
전날 최인석 원장 이어 문제 제기 목소리 커져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법관의 이메일 자료를 압수수색하면서 피의사실과 관련 없는 자료를 '별건 압수'했다는 고위 법관의 주장이 제기됐다.
또 효력이 상실된 압수수색 영장으로 법원 직원 전체의 이메일 자료를 압수수색 대상으로 삼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 이후 검찰 수사의 적정성을 문제 삼는 법원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30일 법원에 따르면 김시철(53·사법연수원 19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법원 내부 전산망에 '서울중앙지검 사법 농단 의혹 수사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는 2015년∼2017년 초까지 서울고법 형사7부 재판장을 지내면서 '댓글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사건을 심리했다. 당시 양승태 사법부는 '원세훈 사건 환송 후 당심 심리 방향' 등의 제목으로 형사7부에 관한 동향 파악 문건 등 6건의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부장판사의 주장에 따르면 검찰은 이와 관련한 양승태 사법부의 직권남용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지난 11일 분당에 있는 대법원 전산 정보센터에서 2015년 7월∼2016년 2월 말 김 부장판사와 A 전 재판연구원이 주고받은 이메일 자료를 추출했다. 이 가운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피의사실과 관련된 내용이 있는지 수색했지만, 동향 파악 문건과 관련한 이메일은 1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대신 김 부장판사가 재판부 내부 구성원들과 사건을 검토·논의하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125건의 이메일과 첨부 파일을 압수했다고 김 부장판사는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피의사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 압수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명백히 이의를 제기했지만 검사가 이를 그대로 압수했다"며 "이는 별건 압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후에도 검찰이 위법한 압수수색을 거듭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11일 자신에게 제시한 영장으로 29일 거듭 대법원 전산 정보센터에서 법원 전 직원의 이메일 자료를 추출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에서 '11일 이뤄진 압수수색은 김 부장판사 개인 메일 계정만 대상으로 한 것이고, 전체 이메일 백업 데이터에서 김 부장판사와 A 전 연구관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검색해야 한다'는 설명을 내놨다고 했다.
이후 검찰은 김 부장판사를 다시 참관시켜 법원 전 직원의 이메일을 대상으로 추출한 자료 가운데 김 부장판사가 주고받은 이메일 14건을 압수했다고 한다. 이 14건 역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피의사실과는 아무 연관이 없었다는 게 김 부장판사 주장이다.
김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검찰은 11일 자 영장이 이미 집행이 종료돼 실효된 것이 명백한데도 영장 유효기간이 남아있다고 해서 다시 법원 가족 전체의 이메일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수색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실질적으로 영장 없이 진행된 불법적인 수사를 통해 법원 가족 전체의 이메일 자료가 합법적 근거 없이 수사기관의 수색 대상이 됐고, 그중 일부가 실제로 압수됐다"며 "이는 그 자체로 중대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참관인의 명시적인 이의 제기가 있었음에도 명백하게 위법한 수사를 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측면이 있다"며 "이런 일이 방치된다면 일반 국민이나 다른 기관에 대한 강제수사 과정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국민에 대한 법익 침해 위험성 등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부장판사에 앞서 전날엔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이 내부망에 "법원은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법원이 영장 발부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최근 사법 농단 의혹 수사와 관련해 매일같이 영장을 청구하는 검찰의 수사 행태를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 내에서 그간 검찰 수사에 대해 할 말이 있어도 참아왔는데, 특별재판부 설치 주장이나 임종헌 전 차장 구속 사태를 겪으면서 법을 다루는 사람들로서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는 인식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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