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피고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무려 13년 8개월 만에 나온 것이다. 늦었지만 이번 판결이 징용 피해자들의 평생의 한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정부는 피해자들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결론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전제에서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적 배상청구권을 불인정한 일본 법원의 판결이 일제의 강점을 불법으로 보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하므로 국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천명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역사 바로 세우기'에 해당한다. 최대 쟁점이던 징용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청구권을 불인정한 일본 법원과 달리 우리 대법원이 청구권을 인정함에 따라 징용 피해자들의 유사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이 '징용 배상'이라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놓지만, 사법부가 국민에게서 박수를 받을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소송이 무려 13년 넘게 걸렸다는 점에서다. 원고 4명 중 3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번 대법원 전합(全合)의 판결도 핵심 내용을 보면 5년 전인 2012년 대법원 소부(小部)의 결론 그대로다. 그런데도 상고심에서 재상고심까지 5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한일관계 개선을 구실로 행정부와 사법부 간 '재판지연' '대법원 판결 뒤집기' 등이 논의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난 터라 법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따갑다. 대법원은 피고 측인 신일본제철이 재상고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선고를 미루다가 '사법농단'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재판지연의 배경까지 캐고 들자 지난 7월 이번 사건을 전합에 전격 회부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번 소송 처리 과정이 사법부의 오점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날 판결로 한일관계가 악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과거사 및 역사 문제로 자주 충돌해온 두 나라는 최근에도 위안부, 독도, 욱일기 문제 등으로 신경전을 벌였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에 따른 모든 배상책임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른 5억 달러 제공으로 소멸했다는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개인 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의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
정부는 현재 북한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야심 차게 추진 중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지지와 협력 없이는 목표 달성이 사실상 어려운 과제다. 정부가 이번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되 한일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지혜와 외교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동안 개인 배상청구권을 불인정해온 정부의 원칙과 다른 만큼 행정-사법부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완충점을 찾아 안정적인 대일 외교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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