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회당 총기난사 희생자 첫 장례식…트럼프 방문 반대 시위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11명의 희생자를 낸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한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행(行)에 나섰지만, 정작 피해자 가족들과 유대인 지역사회 안팎에서 따가운 시선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여기에 여야 지도부도 사전 일정 등을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동행하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반(反) 유대인 증오범죄로 기록될 이번 총기 난사 등 6·11 중간선거 국면에서 '증오범죄'가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야권 등으로부터 분열적, 선동적 언어로 '우파 극단주의자'들을 부추겼다는 비판론에 직면한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그 행정부가 이번 '대학살'을 불러온 반(反)유대주의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희생자의 가족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지 않아 하며 그를 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은 희생자들에 대한 첫 번째 장례식이 엄수된 날이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피츠버그 방문 시 희생자 11명 가운데 한 명인 교사 출신의 고(故) 대니얼 스타인(71) 씨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을 제안했지만, 스타인 씨 가족은 이를 거부했다고 스타인 씨의 조카 스티븐 핼리가 전했다.
핼리는 스타인씨 가족이 만남 제안을 거부한 데에는 "회당 안에 무장 경비원이 배치됐더라면 참극을 막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고 직후 발언도 일정부분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이들이 지역사회에 책임을 돌린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교회와 회당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개방적 공간이 돼야지, 요새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의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 의장과 미치 매코널(켄터키) 상원 원내대표, 민주당 낸시 펠로시(캘리포니아) 하원 원내대표와 척 슈머(뉴욕) 상원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피츠버그 방문 동행 초청을 모두 거절했다고 WP와 CNN방송 등 외신들이 의회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라이언 의장과 매코널 원내대표 모두 지역구 일정 등 이미 잡힌 '선약'과 겹쳐 동행하지 못하게 됐다고 의원실 측이 설명했다고 한다.
CNN에 따르면 패트 투미(공화), 밥 케이시(민주) 등 펜실베이니아에 지역구를 둔 여야 상원 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의 피츠버그 방문길에 함께 하지 않는다. 투미 상원 의원은 초청을 받았지만, 지역구 일정 때문에 참석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소속인 케이시 상원 의원은 초청을 받지 못한 상태로, 펜실베이니아 남동부 지역의 희생자 추모 기도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민주당 소속의 빌 페두토 피츠버그 시장, 참사의 현장인 '트리 오브 라이프' 유대교 회당이 속한 앨러게이니 카운티의 장인 리치 피츠제럴드 등 지방정부 당국자들도 트럼프 대통령 방문 일정에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고 대변인들이 전했다.
페두토 시장은 "모든 초점은 희생자들에게 맞춰줘야 한다"며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가 마무리될 때까지 피츠버그 방문을 연기할 것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촉구해왔다.
유대인 성직자 사이에서는 찬반이 엇갈리는 분위기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 유대교 회당 소속의 랍비(유대인 성직자)로, 사고 발생 후 정치권을 향해 '증오의 언어들을 중단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해온 제프리 마이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피츠버그 방문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WP가 전했다.
반면 랍비를 지낸 척 다이아몬드는 인터넷매체 데일리비스트에 "트럼프 대통령의 레토릭은 끔찍했다"며 "나는 대통령에게 기다려줄 것을, 우리가 먼저 희생자들을 땅에 묻고 애도할 시간을 가진 다음에 올 것을 간곡히 청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진보 성향의 유대인 단체인 '벤드 디 아크'(Bend the Arc)가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 쓴 공개편지에 수만 명이 서명했다고 WP는 보도했다.
이 편지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당신의 말과 정책들은 백인 국수주의 운동을 심화시켜왔다"며 "당신은 살인자가 사악하다고 했지만, 이 폭력은 당신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도 진행됐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피츠버그에 오는 걸 환영하지 않는다고 반대하는 내용의 시위에 1천200명이 넘는 이가 등록했다.
실제 백악관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일정을 조정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주 중·후반부에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세 일정이 릴레이로 잡혀 있던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건 당일 피츠버그 방문을 약속한 만큼 이를 지키고 싶다는 입장을 견지, 예정대로 일정을 진행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번 피츠버그 방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와 유대인인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결혼과 함께 유대교로 개종한 장녀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이 동행했다.
[로이터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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