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의 만행에 산산이 부서진 한 가족의 삶

입력 2018-10-31 11:12   수정 2018-10-31 16:13

5·18 계엄군의 만행에 산산이 부서진 한 가족의 삶
'두부처럼 잘려나간 너의 젖가슴' …5월 항쟁 노랫말로 불리기도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성폭행 17건이 공식 확인되면서 무참하게 희생된 여성 피해자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재조명받고 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이던 20살의 꽃다운 손모씨는 1980년 5월 22일 광주 시내 도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던 손씨였다.
발견 당시 얼마나 두들겨 맞았던지 온몸이 두부처럼 짓이겨져 있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한 달이 지나 작성된 광주지검 공안부의 검시조서는 "왼쪽 가슴에 날카로운 것으로 찌른 상처와 골반부 및 대퇴부에 여러 발의 총탄이 관통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계엄군이 대검으로 가슴을 찔렀고, 실신했거나 죽은 상태의 손씨의 성기에 집중적인 총격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계엄군이 성폭행을 은폐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지만,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손씨 가족의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손씨의 남동생은 일요일이었던 5월 18일 평소에 다니던 교회에 가다가 계엄군에게 끌려가 22일 석방될 때까지 온몸이 멍이 들 정도로 모진 구타를 당했다.
양쪽 어깨는 골절됐고, 대검에 찔린 왼쪽 허벅지는 10㎝ 이상 찢어져 있었다.
그 후유증으로 남동생은 간질 증세를 보이며 군인들만 보면 싸우려 들었다.
손씨의 처참한 시신을 본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게다가 아들까지 폭행과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자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1년만인 1981년 세상을 떠났다.
손씨의 어머니도 딸이 숨졌다는 소식에 사지가 경직되는 이상 증세가 찾아와 호전되지 못하고 반신불수의 몸으로 6년 동안 고생만 하다 세상을 등졌다.
손씨는 부모님과 함께 5·18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손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대표적인 5월 항쟁 노래 가사에서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으로 형상화하며 시민들의 가슴 속에 기억되고 있다.



i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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