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거부자들 "범법자 안 되고 종교·양심 지킬 수 있게 돼"

입력 2018-11-01 16:28   수정 2018-11-01 18:07

병역 거부자들 "범법자 안 되고 종교·양심 지킬 수 있게 돼"
대법원 판결 환영…"판결 취지에 맞는 대체복무 마련" 촉구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최평천 기자 =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병역거부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람들도 마음의 짐을 내려놨다.
병역 거부자들은 "14년 만에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병역 거부자들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한 판결"이라며 대법원의 결정을 환영했다.
종교적 병역거부로 수감생활을 한 여호와의증인 신도 손 모(37) 씨는 "범법자가 되지 않고 종교를 믿을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고 소감을 밝혔다.
손씨는 신체검사결과 4급 판정을 받아 자연휴양림에서 복무할 수 있었지만, 여기에는 4주 군사훈련이 포함됐다. 결국 그는 군대 입영을 거부했고 2012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예수그리스도가 알린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또 다른 신도들을 상대로 총을 들고 죽이면서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며 "총이나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미 감옥에 다녀왔지만, 오늘 판결로 병역 거부자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적 병역거부뿐 아니라 전쟁 반대 등 비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도 이번 판결을 반겼다.

이날 대법원 판결을 직접 방청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 박상욱(25) 씨는 "14년 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을 생각하면 오늘 원심 파기 선고는 커다란 진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6월 28일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고 올해 9월 출소한 박 씨는 "한 대법관은 '양심이란 착하고 나쁜 개념이 아니라 침해당했을 때 자아가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제는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고통에 공명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군대 입영 거부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항소해 2심 재판 진행 중인 홍정훈(28) 씨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다.
홍씨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 행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평화적 신념'으로 군대 입영을 거부했다"며 "군대라는 공간에서 무기를 들고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입영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인정하지 않았던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인정해준 것"이라며 "이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졌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평화를 지키겠다는 목적을 갖고 군대에 가는 분들의 선택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 선택과 똑같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선택도 똑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역 거부자들은 대체복무제 마련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2006년 8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다 이듬해 10월 출소한 이용석(38) 씨는 "늦었지만 아주 반길 만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는 한국사회가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 논쟁을 떠나 어떤 대체복무제를 만들어야 대법원 취지에 따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라며 "현역 군인과 병역 거부자, 우리 사회 전체의 인권실현과 안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체복무는 비군사적인 업무여야 하고, 철저하게 공적인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기간도 예외적인 사안에서는 길게 할 수 있겠지만, 군 복무 기간의 1.5배가 넘으면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2009년 1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마친 뒤 양심적 병역 거부자 징병 문제를 연구하는 배승덕(35)씨 역시 "국민 여론조사를 봐도 대체복무 도입에 대해서는 합리적이라는 답변 비율이 70% 정도에 이른다"며 "사법부에서 결단을 내린 만큼 미뤄오던 대체복무제 논의도 진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ae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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