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잘 살자'는 꿈은 어느 정도 이뤘지만 '함께'라는 꿈은 아직 멀었다며 "경제적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고, 더 공정하고 통합적인 사회로 나가야 하며, 그것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이라고 밝혔다. 커지는 양극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은 "기존의 성장방식을 답습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노선은 흔들림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생산·고용 지표의 악화로 경제정책의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경제정책 기조 불변'으로 답한 것이다. 저성장과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는 단기간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인 만큼 긴 호흡으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며 수출 대기업의 낙수효과에 기댄 과거의 성장 일변도 패러다임으로는 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치유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과거처럼 성장의 혜택이 소수에만 집중되지 않고 국민 다수가 성장 혜택을 골고루 누리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IMF, OECD 등 국제기구들도 제시하는 새로운 성장전략이자 공동체 통합 비전으로 지향해야 할 노선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로드맵이다. 새롭게 경제 기조를 바꿔 가는 과정은 비전이 담은 '장밋빛 미래'보다는 꽃을 피우기까지 '가시밭길'이 먼저 발에 밟히는 게 현실이다. '포용적 성장'의 열매는 경제적 약자에게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 시간 단축 등 구체적 정책 추진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수반되고 있다. 고통을 치유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과정의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이 최소화되는 길도 모색돼야 한다. 부정적인 경제 지표 탓에 증폭되는 여론의 불안도 달래야 한다. 비전도 중요하지만, 로드맵이 촘촘하게 짜이고 실행돼야 하는 이유이다.
내년 예산안은 포용국가를 향한 첫걸음이다. 관료적 타성이 예산 편성에 스며들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세금이 허투루 소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연구개발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20조 원을 돌파하는 등 혁신성장 예산이 대폭 늘어났지만, 국회에서 규제혁신이 입법화되지 않으면 혁신성장은 공허한 구호다. 포용국가는 혁신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미래지향적 비전이 될 수 없다. 다음 주 예정된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야당을 설득하는 정치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예산은 야당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야당도 예산 심의에서는 투쟁 야당이 아니라 대안 야당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문 대통령은 "권력적폐를 넘어 생활적폐를 청산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어쩌면 생활적폐가 일상에서 국민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불공정이고 부조리일 것이다. 공기업의 고용세습 의혹이나 일부 기업 CEO들에서 드러난 '갑질'이 대표적이다. 생활적폐 청산은 편 가르기가 아니라 생활 속의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다. 문 대통령 말대로 "기적같이 찾아온 이 기회"를 다시 위기로 되돌리지 않고, 비핵화·평화 프로세스를 궤도에 올리도록 초당적 협력도 모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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