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대법원이 1일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대를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 결정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하지 않다며 유죄를 선고한 2004년 판례를 14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 모 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 향후 파기환송심과 재상고 등에서 무죄 취지가 번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 결정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법부 판단에 새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재판부의 다수는 오씨가 병역거부 사유로 내세운 종교적 신념을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로 인정해 "형사 처벌하는 것은 양심자유에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병역의무를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한 형사 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며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이 양심실현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본 이전 판례의 정반대다.
반면 소수 대법관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현실적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무죄를 인정한 다수 견해는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크게 벗어나 갈등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판결 후 인터넷 공간에서도 "앞으로 군대 갈 사람이 있겠나" "병역을 이행한 사람은 비양심적이란 말인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소지가 크다"는 등의 불만과 우려가 폭주하고 있다. 반면 일부 종교·인권·시민 단체는 판결을 환영하며 합리적 대체 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번 판결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277건, 전국 법원에서 1·2 재판을 받는 병역거부자 930여 명에 대해 무죄 선고가 예상된다. 검찰도 앞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릴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판가름할 기준이 모호한 점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양심은 인간 심리 내면의 것으로 쉽게 판별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대법원이 정당한 양심적 병역거부의 기준을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고 제시했지만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종교나 양심을 내세운 병역 기피가 늘지 않을까도 걱정된다. 법원과 검찰 등이 긴밀히 협의해 납득할 기준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합법화와 맞물려 당장 시행돼야 할 대체 복무제가 이제 겨우 논의 단계라는 점도 문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가 없는 조항은 '헌법 불합치'라며 2019년 말까지 법 개정을 요구했다. 국방부 등이 관련 논의를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개정 병역법은 2020년부터나 시행이 예상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고 대체복무를 안 해도 되는 기간이 1년가량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도기적 혼란 방지를 위해 관련 당국은 법 개정을 서두르기 바란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