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형제단 일원" 주장…"인신비방 통한 사태 수습책" 해석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 사우디 아라비아의 최고 실력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피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위험한 이슬람교도'라고 지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빈 살만 왕세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하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들에게 미국과 사우디 동맹 관계를 계속 유지해나갈 것을 강조하며 카슈끄지가 미국, 사우디 모두 테러조직으로 보고 꺼려왔던 '무슬림 형제단'의 일원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들의 대화에 관여했던 한 소식통은 이 통화는 사우디가 카슈끄지 살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전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신문은 문제의 통화가 지난달 9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당시 통화에서 쿠슈너 보좌관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과 사우디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볼턴 보좌관은 카슈끄지에 대한 빈 살만 왕세자의 평가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슈끄지 유족도 '위험한 이슬람교도' 규정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유족은 "카슈끄지는 결코 무슬림 형제단 멤버가 아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그런 주장을 과거 수년에 걸쳐 거듭 부인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위험한 인물'이 될 수 없는 사람이며 그를 그렇게 묘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우디는 당초 이집트에서 창설돼 이슬람 정치사회 운동을 펼치던 무슬림형제단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오다가 2010년말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 이후로 이 단체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상태다. 사우디는 지난해 카타르와 외교관계를 중단하면서 카타르가 '테러리스트'인 무슬림 형제단에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 역시 지난 2015년 반미 성향인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사우디의 이런 평가에 동조했다. 당시 미 하원의원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무슬림 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결의안에 동의했다.
카슈끄지에 대한 사적인 비방 시도는 사우디 정부가 최근 공식 성명에서 카슈끄지의 죽음을 "끔찍한 실책"이며 "엄청난 비극"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대비된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칼리드 빈 살만 주미 사우디대사 역시 지난달 카슈끄지에 대해 "생애 대부분을 국가에 헌신했던 친구"라고 표현했다.
사실상의 사우디 최고지도자인 빈 살만 왕세자도 지난달 24일 한 패널 토론에서 "이번에 발생한 일은 모든 사우디인들에게 매우 고통스럽다"며 "카슈끄지 살해는 정당화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랬던 빈 살만 왕세자의 표변은 카슈끄지를 사적으로 매도해 이번 사태를 서둘러 정리하려는 사우디의 양면 수습책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인 브루스 리델은 "계획적인 살인에 인신공격까지 더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우디 측은 카슈끄지에 대한 이런 평가 내용을 부인했다. 사우디 한 당국자는 "그런 발언은 전달되지 않았다"면서 '위험' 운운 내용의 통화를 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며 빈 살만 왕세자와 미국 고위층간에 "지속적으로 일상적인 전화통화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joo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