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탈북 학생 마음의 문을 열어드려요"…정병수 교사

입력 2018-11-04 08:00  

[사람들] "탈북 학생 마음의 문을 열어드려요"…정병수 교사
'백두대간 수업 연구회' 이끌며 탈북 학생 위한 봉사활동
"받는 데 익숙해지기보다 베풀 수 있는 사회구성원 됐으면"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광주에는 이른바 탈북 학생이라 불리는 초·중·고교생이 87명 있다.
북에서 남으로 직접 건너오기보다는 부모 중 어느 한쪽이 북한을 이탈해 정착한 사례가 많다.
대개는 북한 이탈 주민인 어머니가 중국이나 동남아를 거쳐 입국해 먼저 자리를 잡은 뒤 현지에서 낳은 자녀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생 상당수는 중국인 아버지를 두고 현지에서 자라다가 입국해 언어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다문화 학생과 다를 바 없는 데다가 어린 시절을 타국에서 자랐으니 통역이 필요할 만큼 소통 능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정병수(49) 씨는 이런 학생들의 멘토다.
광주 정광고 지리 교사인 정씨는 탈북 학생들과 뜻하지 않은 계기로 연이 닿았다.
정씨는 2012년 사범대 '88학번' 동기들끼리 '88 교육 봉사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 무렵 됐고 교직 생활도 자리를 잡았으니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음악, 미술, 사회, 과학 등 부부 교사 10여명이 참여해 인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차에 광주시교육청으로부터 연구회에 연락이 왔다.
2016년 탈북 학생 맞춤형 수업 연구회 운영 공모를 했는데도 응모자(단체)가 없어 난감한 상황이었다.
모임 회원들은 흔쾌히 연구회 운영 제안을 받아들여 '백두대간 수업 연구회'를 만들었고 정씨는 회장을 맡았다.
연구회는 언어지도에서부터 국토 순례, 텃밭 가꾸기 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야구장, 극장 등 문화 체험으로 정서적 적응도 돕는다.
나이가 어려도 먼저 정착한 학생이 더 나이 많은 학생을 돕고, 부모끼리도 친분을 쌓는 등 자체 소통으로 공동체를 구성해 도움을 주고받는다.
연구회에서 상시로 활동하는 인원은 많지 않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교사, 사업가, 서로의 친구, 관광버스 기사 등 개인은 물론 동문회, 향우회에서도 비용과 시간을 기꺼이 학생들을 위해 내놓는다.
학생들은 최근 나주시 노안면 유곡리에 있는 '통일 염원 텃밭'에서 고구마와 땅콩을 수확해 일부를 광주 송정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급식 재료로 기부하기도 했다.

어려운 여건에서 자라는 학생들이지만 베풀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연구회는 독려한다.
정씨는 "생필품을 전달하거나 여행을 가는 등 일회적인 이벤트가 많지만, 학생들이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남을 위해 베풀어 가는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존감을 형성해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물질적인 것보다는 지속적, 안정적으로 학생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정씨는 강조한다.
정씨는 "언어 소통이 잘 안 되고 부모가 수입이나 시간 면에서 여유가 없어 학원에 가기 어려운 탈북 학생들은 고교생이더라도 일과가 끝나면 집에 가서 혼자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며 "중국에 있는 친구들과 휴대전화 채팅에 열중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일이 요란한 기부보다 더 값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한 보상도 없고 휴일을 빼앗기는 게 다반사지만 정씨는 탈북 학생들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웃었다.
그는 "백두대간 수업 연구회가 차츰 알려져 여기저기서 요즈음 뭐하냐는 전화가 오는데 활동을 안 해버리면 이상하게 될 것 아니겠어요? 다른 분들도 어쩌다 보니 시작했지만 어려움이 많은 아이에게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들 말씀하세요."라고 말했다.
sangwon70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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