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씨알콜렉티브 '오염'展…최선·컨템포로컬·쟌 문 등 참여
분단이 몰고 온 '오염'된 일상 고찰…제염·양봉 등 수행적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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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검은 물감을 짜 캔버스에 마음 가는 대로 짓이긴 듯한 강준영 그림 '서울, 서울, 서울 그리고 사우스와 노스 <4>'는 치약을 문지른 뒤 검게 채색한 것이다.
연희동에서 꼬박 39년을 산 작가에게 치약은 생활용품 이상 존재다. 대학이 지척이던 동네는 최루탄 연기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 어릴 적 작가는 선생이 준 치약을 인중에 바른 채 학교를 나서곤 했다. 치약이 최루가스 퇴치 효과가 있다 해서였다.
전시공간 씨알콜렉티브에서 분단과 그 트라우마를 주제로 한 기획전 '오염' 참여를 제안했을 당시, 작가에게 치약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작가이기에 앞서 동네 주민으로서 태도를 취하고 싶었어요. 먼 이야기보다 제 개인 역사로 들여다보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강준영 작가)
1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씨알콜렉티브에서 개막한 '오염'은 분단이라는 한반도 특수상황이 우리 삶을 부지불식간에 '오염'시켰다고 말한다.
강준영, 신제현, 최선, 컨템포로컬(윤주희·최성균), 쟌 문, 요하나 비스트롬 심즈 작가는 이러한 오염된 현실을 다각도로 고찰한다. 이는 '비오염'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다.
오세원 디렉터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분단이 몰고 온 상황이 예술가 작업에 트라우마로 작용해 왜곡되거나 폭력을 가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기획했다"라면서 "거창한 통일 담론보다 이러한 일상 트라우마 치유가 먼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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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북한으로부터 흘러왔을 강원도 고성 바닷물을 직접 퍼 나르고 끓여 소금을 추출, '북한의 맛'(2018)을 완성했다. 바닷물을 적신 검은 천이 마르면서 희끄무레한 소금 알갱이들이 밤하늘 별처럼 반짝이기도 한다. 이 작업은 북한 바닷물로 추출한 소금 역시 짜더라는,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전한다.
작가는 "'빨갱이' 단어가 조장한 막연한 공포와 유치한 진지함의 실체를 맛보고 싶었다"라면서 "하얀 소금 결정들이 눈에 보이자, 눈에 보이지 않았던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 실체가 우리 앞에 비로소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고 설명했다.
강준영은 치약-꽃 그림과 도자기 수류탄 등을 선보임으로써 동요와 저항, 억압과 폭력의 기억을 재검토한다. 부부작가인 컨템포로컬은 강원도 양구 펀치볼에 전쟁 공포의 역사, 땅을 향한 자본주의적 욕망을 함께 담아냈다. 이밖에 통일 한반도의 가상 국화인 '함박 무궁화'를 표현한 신제현 작업과 남북한 군사경계선에서 양봉을 제안하는 쟌 문의 양봉통 등도 감상한다.
제염과 양봉, 수확, 조향 등 수행적인 성격이 강한 점은 출품작 공통점이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최은영 큐레이터가 함께 마련한 이번 전시는 내년 중에 뉴욕에서도 이어질 계획이다. 한국 전시는 12월 8일까지. 문의 ☎ 070-400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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