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소리에 문 열었더니 연기가"…비상문 손잡이 잡았다가 2도 화상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아래층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나길래 싸움이 난 줄 알았어요. 여긴 싸우는 일이 없는데, 이상하다 했더니 불이 난 거였어요."
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정 모(62) 씨는 화상을 치료 중인 서울 중구의 한 병원에서 기자를 만나 사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옥탑 층에 거주하는 정씨는 불이 난 직후 아래층에서 나는 둔탁하고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항상 조용하던 고시원에서 벌어진 소란에 당황한 정씨는 아래층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가 연기에 휩싸이고 나서야 불이 난 것을 깨달았다.
불이 난 걸 깨달은 정씨는 옥상으로 통하는 비상문을 열기 위해 달궈진 손잡이를 잡았다가 양손에 2도 화상을 입었다. 평소에도 문고리가 조금 뻑뻑했던 비상문은 정씨가 당황했던 탓인지 잘 열리지 않았고, 연기가 자욱해 호흡이 가빠왔다.
정씨는 "'아이고 큰일 났다, 어떡하지?' 하면서 혼자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마침 소방관들이 도착해 마스크를 씌워줬다"며 "(소방관들 도움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건물을 빠져나왔다"고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건물을 나오면서 보니까 불길이 건물 바깥까지 뻗는 게 보였다"며 "건물을 빠져나오고 나와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기자로부터 이날 불로 숨진 사람이 현재까지 7명이라는 말을 듣고 놀랬다. 그는 "다들 자는 중이라 (탈출할) 경황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씨는 "(고시원 건물에) 스프링클러 자체가 없다"며 "소화기는 있었는데 정신이 없어 불을 끌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방관들이 자주 점검을 하고 복도에 물건을 쌓아두지 못하게 관리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아내와 아들이 있는 부산을 떠나 홀로 서울에서 일하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해왔다. 6∼7년 전부터 국일고시원에 장기 투숙하며 관리비나 전기·수도세를 따로 내지 않고 40여만원을 월세로 냈다.
고시원에 머문 이유를 묻자 정씨는 "괜히 보증금을 걸고 (다른 주거지에서) 지내기보다 아들도 장가를 가야 하니까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고 그랬다"며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으니까, 아직 나이가 있어도 포기 안 하고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오피스텔은 아무리 작은 곳도 매달 80만 원은 써야 한다. 관리비도 나가고, 수도·전기세도 전부 따로 내야 한다"며 "여기(고시원)는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사고 직후 부산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해 고시원에 불이 나 입원했다고 설명했다. 전부 불에 타 쓸 수 없게 됐으니 옷을 가져오라고도 부탁했다. 그의 아내는 "구사일생으로 살았다"며 안도했다고 한다.
정씨는 양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고 연기를 마셔 시커먼 가래가 나오고 있어 한 달가량 입원해야 한다. 생계가 걱정되지 않는지 묻자 정씨는 덤덤한 목소리로 "크게 문제 될 수 있을까? 맞춰서 살면 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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