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살아남았는데…생존자들 옮긴 새 고시원도 스프링클러 없어

입력 2018-11-11 21:06  

겨우 살아남았는데…생존자들 옮긴 새 고시원도 스프링클러 없어
희생자 상당수 창문 없는 방 거주…"저렴한 방 택했다 탈출기회 놓쳐"
고시원 건물주, 비소 검출 백신 수입사 대표 "책임지겠다"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성서호 기자 = 지난 9일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생존자들이 구청에서 마련해준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이들 고시원 중 일부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종로구청 등에 따르면 구청은 국일고시원 화재 피해자 지원을 위해 화재 당일인 9일부터 생존자들이 새 거처를 마련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병원에 있는 피해자를 제외하고 건물 2∼3층 거주자 18명이 고시원 7곳에 나눠 거주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피해자 본인이 원하는 고시원을 찾아오면 그곳에 거주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구청이 직접 나서 고시원을 구해줬다.
국일고시원에서 월 30만 원짜리 방에 살았다면 비슷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한 달 방값을 새 고시원에 치러줬다는 게 구청 설명이다.
하지만 종로구청이 알선해준 고시원과 일부 거주자들이 직접 찾은 고시원 등 총 2곳이 스프링클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구청 직원이 미리 화재 방지 시설 등을 확인했는데 스프링클러가 없다는 사실을 놓쳤다"며 "스프링클러가 없는 곳에 새로 입주한 2명에게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알리고자 계속 연락을 하고 있지만, 일을 나갔는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소방 당국과 국일고시원 거주자들에 따르면 국일고시원 화재로 사망한 7명 가운데 일부는 창문이 없는 방에서 살다가 참변을 당했다.
창문 없는 방은 창문이 있는 방보다 월세가 4만원 저렴한 28만 원이었다.
창문 있는 방 거주자들이 창문과 에어컨 배관 등을 통해 외부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에 비춰보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던 어려운 형편 때문에 탈출이 더 어려웠던 게 아니냐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 고시원 건물을 소유한 건물주 하창화(78) 한국백신 회장은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피해자들을 위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한국백신은 최근 비소가 검출된 일본산 도장형(경피용) BCG 백신의 한국 수입사로, 하 회장은 동생과 함께 각각 40%, 60%의 비율로 건물 지분을 갖고 있다.
하 회장은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큰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법적인 책임과 별개로 도의적인 책임도 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귀국해 화재 현장을 둘러봤다는 하 회장은 "해당 동장을 만나 우리가 도의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자문했다"며 "구청 측과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 회장은 국일고시원 운영자가 서울시의 스프링클러 설치 사업에 지원했지만, 건물주 반대로 무산됐다는 보도에는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사업 신청 당시 동생이 건물을 팔려고 내놨었다"며 "매입자를 찾는 중이었던 데다 명도소송(퇴거소송)까지 진행 중이어서 스프링클러 설치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으로 동생에게 들었다"고 해명했다.



s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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