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평화포럼서 메르켈 "고립주의의 파괴력, 1차대전이 보여줘"
유엔 총장 "현 상황 20세기초와 비슷…타협과 규범 무시는 독약과 같아"
트럼프, 포럼 참석 안 하고 미군 전몰자 묘지 방문 뒤 귀국
(파리·베를린=연합뉴스) 김용래 이광빈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아 프랑스 파리에 모인 정상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를 일제히 성토했다.
독일·프랑스 정상과 유엔 사무총장 등은 1차대전 후 2차대전 발발 전까지의 전간기(戰間期) 혼란상이 현 국제정세와 유사하다면서 미국이 포퓰리즘과 고립주의를 버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전통적 역할로 회귀할 것을 요구했다.
정상들은 미국이나 트럼프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이날 포럼은 일방주의로 나아가는 미국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정작 트럼프는 포럼에 불참했다.
포문을 먼저 연 것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였다.
그는 이날 오후 파리 북부 라빌레트 전시관서 열린 파리평화포럼에서 "1차대전은 고립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우리에게 보여준다"면서 "편협한 국가주의자들의 관점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1·2차) 대전 이후 세워진 것들을 유지하고 보호해야 한다"면서 유엔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오늘날 대부분의 도전은 한 나라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기에 다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은 트럼프 집권 후 확고해진 미국 우선주의 기조와 미국이 다자 국제협약과 기구를 무시하고 고립주의 노선을 걷는 경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연설에서 현 정세가 1차대전을 전후로 한 20세기 초의 혼란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우려했다.
그는 "오늘날 몇몇 요소들을 보면 20세기 초와 1930년대와 유사한 점들이 많다고 본다"면서 "예측할 수 없는 일련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어 무역정책을 둘러싼 긴장 고조에 대해 "정치의 극단화"라고 경고하고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정신의 약화와 규범에 대한 무시는 다원주의에 대한 두 개의 독극물"이라고 비판했다.
그 역시 미국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의 미국 일방주의와 보호무역 기조 등 포퓰리즘 경향을 작심하고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포럼을 주최한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의 미래에는 오늘이 어떻게 해석될지가 중요하다. 항구적 평화의 상징이 되든, 아니면 새로운 혼돈으로 빠져들기 직전의 마지막 단합의 순간이 되든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세계는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위기들로 흔들리고 있다"면서 그 구체적인 예로, 기후변화, 테러리즘, 사이버전쟁, 핵확산 등을 꼽았다.
전반적으로 이날 파리평화포럼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고립주의, 폐쇄적인 무역기조와 전후 서방 자유주의 진영의 리더 역할 포기 등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로이터 제공]
정작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트럼프는 오전 개선문에서 열린 1차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만 참석하고서는 포럼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포럼 불참 방침을 프랑스에 통보한 트럼프는 오후엔 자리를 옮겨 파리 근교의 쉬렌 군사묘지를 방문, 1차대전 당시 미군 전몰장병들을 추모했다.
트럼프는 미군 장병 1천500여 명의 유해가 묻힌 이곳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과 프랑스의 애국자들"을 언급하고 "그들이 한 세기 전 고귀한 목숨을 바쳐 지킨 문명과 평화를 보전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마크롱이 편협한 국가주의와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한 오전 개선문의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 대해 "매우 아름다웠고 잘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연설을 마친 뒤에 곧바로 파리 오를리 공항으로 이동해 귀국행 에어포스원에 몸을 실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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