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유지를 부모 텃밭인 것처럼"공문서위조…범죄시작은 '거짓말'

입력 2018-11-14 08:03  

"군유지를 부모 텃밭인 것처럼"공문서위조…범죄시작은 '거짓말'
공문서 위조·거액 횡령한 지자체 공무원 항소심도 중형
동료에 5천만원 뇌물 줘 농지 원부 등 위조·위작…적용 죄명만 12개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동료 공무원과 짜고 군유지를 부모의 텃밭인 것처럼 공문서 등을 수차례 위조하고, 1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공금을 횡령한 공무원이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 1부(김복형 부장판사)는 특가법상 국고 등 손상, 공문서 위조, 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A(40)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항소심에서 인정된 뇌물의 액수가 일부 줄어 형량은 원심인 징역 8년보다 감형됐지만 A씨는 법정에서 고개를 숙였다.
강원도 내 모 지자체 공무원이던 A씨에게 적용된 죄명은 모두 12개에 달했다.
A씨가 이처럼 많은 죄를 짓고 중형을 선고받은 비극의 시작은 한마디 거짓말이었다.
A씨는 부모로부터 "텃밭을 일구고 싶다"는 말과 함께 수천만원을 건네받았다.
하지만 A씨는 땅을 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지자체 공유재산 관리 업무를 담당하면서 알게 된 휴경지(이하 해당 토지)를 '매입한 토지'라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했다.
딸의 거짓말을 믿은 A씨의 부모는 2015년 1월부터 해당 토지에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관정을 파 농사를 지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해당 토지를 무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동료 공무원 B(47)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그 대가로 B씨에게 5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신용회복 절차 중이어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B씨는 A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범행에 가담했고, 33차례에 걸쳐 5천만원을 뇌물로 받았다.
결국 B씨는 2015년 1월 지자체 사무실에서 농지 원부 전자시스템에 접속해 해당 토지를 A씨 부모 소유로 입력하는 등 모두 14차례에 걸쳐 공전자기록을 위작했다.
이후 A씨의 부모는 2016년 6월 딸이 샀다는 땅이 사실은 지자체 소유라는 것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진위를 따졌다.
이에 A씨는 "지자체에서 임차한 땅"이라고 또다시 거짓말로 둘러댔다.
이번에도 A씨는 B씨에게 요청해 해당 토지를 지자체에서 임차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지자체장 명의의 대부계약서를 위조하는 등 공문서도 위조했다.
얼마 뒤 A씨의 부모는 "임대한 땅인데 대부료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묻자 실제 대부료가 부과된 것처럼 세외수입시스템에 접속해 기록을 위조하기도 했다.
"땅을 구매했다"고 부모에게 한 A씨의 거짓말은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달했다.
급기야 해당 토지 옆에 주택을 신축하려는 주민 C씨가 진입로 개설과 관련한 민원을 제기하자 A씨는 해당 토지의 무단 점유 사실이 발각될까 봐 또다시 공문서를 위조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상적으로 C씨의 건축 허가가 진행된 것처럼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다.
C씨는 건축 허가 등 행정 절차가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믿고 해당 토지 옆에 주택을 지었지만 사실은 무허가 건축물이 되고 말았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A씨의 범죄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수십여 차례에 걸쳐 카드깡 방식으로 1억900여만원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도 들통났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부모에게 한 거짓말이 들통이나 실망감을 안겨 드릴 것 같아 범행을 멈추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판부는 "이미 저지른 범죄를 수습하거나 피해를 보상하기보다 앞선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게 뇌물을 받고 범행을 도운 B씨에게는 징역 5년에 벌금 5천만원 및 4천900여만원을 추징했다.

j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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