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제재 면제에 美·러시아 증산…사우디 감산카드도 '종이호랑이'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국제유가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때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급반전이다.
전 세계 산유량은 꾸준히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속에 원유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투자심리를 억누르고 있다. 수시로 '감산카드'를 꺼내들며 유가를 끌어올렸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4.24달러(7.1%) 하락한 55.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미국의 대(對)이란 원유제재를 앞두고 초강세를 보였던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초 배럴당 76달러 선까지 치솟으며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6주 사이 약 21달러, 28% 내렸다.
이른바 '약세장'(Bear Market)에 진입한 이후에도 반등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약세장은 일반적으로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했을 때를 의미한다.
경제매체 CNBC 방송은 "시장의 관점이 확 달라졌다"면서 "그동안 투자자들은 공급부족을 걱정했다면 지금은 공급초과를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제재와 관련, 8개국에 대해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를 면제하기로 하면서 국제유가는 하락세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에 수급 불균형이 하락세를 부채질하는 양상이다.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와 미·중 무역갈등 등으로 향후 글로벌 경기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수요 급감 우려를 키웠다. 반면에 산유량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달 OPEC 회원국들의 산유량은 하루 평균 12만7천 배럴 증가했다. 이란의 산유량은 줄었지만,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다른 회원국들의 산유량이 크게 늘었다.
OPEC 비회원국인 러시아가 사우디라아비아의 감산 움직임에 난색을 보이는 데다, 미국은 셰일오일을 기반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올라섰다.
앞서 사우디아리비아의 감산 입장에,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유가는 훨씬 더 낮아져야 한다"고 제동을 가한 것도 이러한 자신감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원유 전문가 타일러 리체이는 WSJ에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는 OPEC의 감산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며 "정치가 원유시장에 개입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달러화 강세도 국제유가에는 악재다. 글로벌 시장에서 원유는 미국 달러화로 거래된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면서 그만큼 원유수요자들의 매입 비용이 커지게 된다.
WSJ은 "달러화 가치가 지난해 3월 이후로 최고치에 올라서면서 해외 원유구매자들의 부담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초과공급이 이어지는 만큼 유가가 쉽게 반등 모멘텀을 찾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경기둔화가 현실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낙폭이 과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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