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15일 한국 진출 일본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배상 불가'를 골자로 설명회를 열어 그 의도가 주목된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온 이후 지난 6일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인들을 불러 일본 현지에서 배상 불가 설명회를 한 데 이어 서울서도 같은 행사를 강행한 것이다.
주한일본대사관이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공보문화원에서 한국 진출 일본 기업 모임인 '서울재팬클럽'(SJC)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에는 70여개 기업의 80여 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주한일본대사관 측은 우리나라 취재진의 진입을 불허하고, 자국 매체들에만 취재를 허용해 눈길을 끌었다.
마루야마 고헤이 공사는 이날 설명회의 모두발언에서 청구권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일본 기업의 정당한 경제 활동 보호가 우선 과제라고 생각하는 만큼, 그것을 위한 의연한 대응을 해 나갈 생각"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루야마 공사의 발언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었으나, 서울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이 같은 행사를 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외교가에선 주한일본대사관의 이날 행사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해당 판결을 겨냥해 "폭거이자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연이어 도발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강제징용이라는 말 대신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로 바꿔 불러 '자극'하는 연장선으로 보는 견해가 강했다.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로 차후 강제징용과 관련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줄소송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서울로 격전지를 옮겨 강제징용 문제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종결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맞불을 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날 설명회에서 일본 기업 관계자들은 판결의 정확한 내용과 의미, 그로 인한 한일 경제교류에의 영향, 후속 소송 가능성 등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간에 정치적 사안과 경제교류는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는 자국 기업들에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판결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보조를 맞추라는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현재 우리 정부는 기본적으로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도를 넘은 비난 발언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성명에서 고노 외무상의 비난 발언을 겨냥해 '실망'을 표하며 일본 정부의 올바른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 판결 직후 나온 우리 정부 입장 발표문과 일본 외무상 등의 비판 발언에 대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깊은 우려'를 표명한 발표문 등 2건을 최근 국·영문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등 필요한 대응은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언급) 내용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한국에서 이런 행사를 했다는 측면에 의미가 있다. 이 사안은 한국 정부의 책임인 만큼 대책을 내놓으라는 뜻"이라며 "우리가 이만큼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을 일본 내부에 어필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나 여론이 전반적으로 과잉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적절하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다만 설명회 자체는 일본 내부적 소통의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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