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잠재적 사이코패스"…틀린 상식 뒤집는 심리학강의

입력 2018-11-16 06:00  

"누구든 잠재적 사이코패스"…틀린 상식 뒤집는 심리학강의
괴짜 교수 리처드슨 신간 '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
전기체벌 실험서 다수가 위험 수준 전압 올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은 선하지만, 특정 부류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믿음은 세계 많은 나라에서 통치 세력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구악(舊惡) 척결 구호나 서로를 타도 대상으로 보고 대립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조장하곤 한다.
런던대 실험심리학과 대니얼 리처드슨 교수가 펴낸 '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예문아카이브 펴냄)'에 따르면 오랫동안 인류에게 많은 비극과 희생을 초래한 이런 형태의 믿음은 편견이자 인지적 오류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상황'보다 '기질'에 초점을 맞추면서 발생하는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한다.
2차대전 기간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독일 핵심관료 중 한 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1년 열린 전범 재판에서 '악마'로 묘사됐다.
진짜 그는 타고난 악마여서 무고한 유대인을 마구 학살하는 데 가담한 걸까.
당시 재판을 직접 참관한 유대계 미국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내가 본 아이히만은 증오로 가득한 괴물이 아니라 따분한 중간 관리직 공무원이었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아이히만이 상부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타고난 악마는 없다는 의미였다.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도 유대인 대학살의 본질이 '기질적 귀인'에 따른 것인지, '상황적 귀인'에 따른 것인지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 결론부터 보면 역시 기질적 악마 같은 건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더 충격적인 대목은 특정 독일 엘리트가 아니라 미국의 여느 평범한 마을에서도 집단 학살과 테러를 수행 가능한 사람이 많다는 결론이 나왔다.
원래 정해진 악마도 없지만, 자신만 선하다고 주장하는 누구든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예일대에서 진행한 실험 내용은 이렇다. 먼저 참가자들에게 체벌이 학습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보려는 실험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학생 역을 맡은 사람이 암기해야 할 단어를 틀리면 교사 역을 맡은 사람은 전기 충격을 주고, 오답이 계속되면 그때마다 전압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15V에서 시작하는 체벌은 한 번에 15볼트씩 최대 450V까지 높일 수 있었다. 전압이 120V를 넘어가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은 대체로 상식으로 여겨진다.
밀그램이 이 실험에 관해 설명하자 동료들은 극소수인 1% 정도만 450V 최고 전압을 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극단적 권위주의자나 사이코패스는 극소수일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실제 실험에서 참가자들이 올린 전압 평균값은 최소한 의식을 잃는 수준인 360V에 달했고, 전체 참가자의 무려 63%가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 짜인 각본에 따라 실제 전기가 통하지 않고 비명을 지른 학생이 연기력 좋은 배우였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저자는 이처럼 누구나 학살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점증'을 주목한다. 15V부터 조금씩 올리는 심리학 기술 '문간에 발 들여놓기'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누군가 나쁜 일이나 그들 본성에 반하는 일을 하도록 유도하고 싶다면 여러분 요구를 점진적으로 증가시켜 그들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도록 만들자"고 했다.
이처럼 미끼로 유도하고 점차 빠져들게 하는 심리학 기법 외에도 이 실험에는 '인지 부조화' 이론이 활용됐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어가 고안한 이 개념은 '사이비 종교집단' 가입 실험을 통해 입증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이비 광신도들은 종교적 예언이 틀렸을 때 믿음이 약해질까. 실험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예언이 이뤄지지 않자 이들은 믿음을 더욱 강화했다.
원래 현명하고 이성적인 자신들의 판단이 틀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를 정당화하고 보상하는 기제로 더 강한 믿음을 보인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실 정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어떤 정치인이 법적으로 분명한 범죄를 저질러 형이 확정되고 처벌까지 받았는데도 광신적 지지자들은 오히려 그 정치인의 범죄를 부인하고 지지를 강화하는 현상을 보인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정치·이념·종교 등의 관점에서 옳다고 믿는 신념에 얼마나 많은 오류와 허점이 있는지를 다양한 실험 결과와 전문 지식을 통해 보여준다.
내면의 고정관념을 뜻하는 '암묵적 태도'와 이를 밖으로 드러내는 '명시적 태도'를 현실 정치에 투영해 설명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공화당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할 때 부시의 참모인 칼 로브는 '암묵적 태도'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강제 유도 여론조사'로도 불리는 방식이다. 로브는 선거 운동원들을 시켜 '공직 후보자에게 혼외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떨지'를 물어보게 하면서 매케인이 검은 피부색의 아이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간통과 유색인종에 대한 부정적 사고방식을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떠올리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사실 사진에 나온 아이는 방글라데시 출신 고아로 병을 치료해주려고 입양해온 딸이었다. 로브는 매케인 부부의 인도주의적 행동을 오히려 부정적 요소로 활용한 것이다.
박선령 옮김. 272쪽. 1만3천800원.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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