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문학관 10주년 기념식' 기자간담회
(보성=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태백산맥', '아리랑'으로 유명한 문학계 거장 조정래(75) 작가가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작가는 17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0주년 기념식'에 앞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통일 문제는 잘 하고 있으나 경제 문제는 잘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두 가지 측면으로 봐야 한다. 통일의 문제, 분단 문제는 매우 잘하고 있고, 그다음이 경제 문제인데 1년 반 지나는 동안 가시적인 효과가 없이, 고용창출을 내세웠는데 자꾸 후퇴하고 있다. 경제팀 두 사람을 바꾸기까지 했는데, 지금까진 잘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1년 더 기다려보자. 최소한 3년은 기다려야 하니까. 앞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최대한 노력할 거다. 그 시간을 주자"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제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태백산맥'의 시대적 배경인 해방 직후와 지금 우리 사회를 비교해 "그때와 오늘날의 상황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해방 직후는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정당 300개가 난립하는 혼란의 시대였다. 지금은 정당이 많아야 5개 정도이고 70년의 역사가 흘러가며 조직화한 사회를 이뤘다. 그러나 인간사는 계속 문제가 많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가난이 좀 해결됐고, 국가 질서와 기간산업이 갖춰져 안정된 상태다. 이렇게 안정된 속에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특히 경제 문제, 삶의 문제가 지금 중요하다. 한국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2만9천 달러인데, 가장 큰 문제가 미국 다음으로 양극화, 소득 차이가 엄청난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안 된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대기업과 10대 재벌이 소유한 회사의 비정규직이 평균 42∼48%인데,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나. IMF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국민 75%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말했는데, IMF 이후 임시방편으로 비정규직이 만들어졌고, 그게 해결이 안 돼 지금까지 와버렸다. 지금 '나는 빈곤층'이라는 대답이 47%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재벌이 계속 돈을 벌어서 사내유보금이 총 900조가 넘었다고 한다. 이러면 이 나라가 되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이어 "철학적 명제 '우리는 왜 사는가'에 소크라테스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는데, 혼자만 행복하면 그 행복이 보장되겠나. 아니다.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 릴케는 불행한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그 사회는 불행한 사회라고 했다. 시인의 감성이 아니라 경제 논리를 말하는 거다. 우리 모두 행복하기 위해 경제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경제 문제 외에 우리 사회에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별로 없다. 가장 중요한 게 삶(경제)의 문제이다. 정쟁은 해야 한다. 왜? 민주주의니까. 거대한 타협을 위해,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싸우고 타협해야 한다. 타협이 나쁜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타협하기 위한 것이다. 야합이 나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쟁은 필요하다. 국회의원들에게 왜 싸우냐고 하는 건 바보다. '많이 싸워라, 건강하게 싸워라'라고 말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국가와 정치에 대한 이런 철학을 녹여 신작 '천년의 질문'을 집필하고 있다. 매일 15∼20매를 쓰고 있다고 했다.
"주제가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예요.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든 나라 국민은 '도대체 국가가 내게 해주는 게 뭐지?' 회의하고 질문했어요. 그런데 그 응답이 없었죠. 내가 그 응답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세 권인데, 한 권을 막 완성하고 여기 왔어요. 앞으로 두 권을 써서 내년 6월 10∼15일에 책이 나올 거예요. 나는 항상 예측해서 초과 달성하는 사람이거든(웃음)."
그는 지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해서는 "자격 미달인, 미숙한 하나의 정권이 저지른 잘못이지, 우리 사회 전체가 병들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 (문화계에서는) 문화부 장관이 더 과감하게 해결 못 했다고 항의하는데,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던 사람은 박근혜, 김기춘이고 그들이 지금 벌을 받고 있다. 하수인인 실무자들에게는 좀 더 관대해도 되지 않나. 반성한다면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나도 그 블랙리스트 올라간 사람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태백산맥'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는 이유를 묻자 "'태백산맥'에서 소작인이 하는 말이 '나라가, 지주가 빨갱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 당시 지주가 오늘의 자본가·재벌로, 소작인이 오늘의 노동자들로 바뀐 것뿐이다. 일본강점기에는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명제가 있었고, 지금은 민족이 분단됐으니 통일이 사회적 명제다. 그 두 가지 때문에 '태백산맥'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태백산맥문학관은 2008년 11월 21일 개관한 이래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누적 관람객이 65만 명을 넘어섰다.
작가는 "작품 하나를 가지고 단독 문학관을 만든 것은 세계 최초다. 내 사재를 털어서 필사본 방도 따로 만들었다. 그것도 세계 최초다. 빅토르 위고,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도 필사본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매해 7만∼8만명이 다녀갔는데, 적자가 아니라 흑자가 난 대한민국 유일한 문학관이다"라고 말했다. 흑자 비결을 묻자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작품을 잘 썼으니까 그렇겠지. 볼거리가 많고 독자가 많아서 '태백산맥이 어떻게 쓰였을까' 궁금해서 와보는 것이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1986년 출간된 '태백산맥'(전 10권)은 지금까지 850만 부 팔렸다. 독자들이 소설을 베껴쓴 필사본이 34본이나 된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작가와 독자들의 대화, 필사본 기증자 감사패 수여식, 태백산맥전국백일장대회 시상식 등이 열렸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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