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부 "모든 국가가 성명 지지하지 않은 건 불행…불공정 무역과 싸울 것"
中외교부 "미국이 회의 분위기 망치고, 갈등 조장"…中매체도 가세
美 고위 당국자 "남중국해·대만 문제, 중국에 양보하지 않을 것"
(홍콩·서울=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이윤영 기자 = 미국이 지난 18일 막 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공동성명 채택이 불발된 것을 중국 탓으로 돌리며 역공에 나섰다.
전날 중국 외교부가 미국에 책임을 돌리며 강하게 비난하자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역내 경제와 안보 질서를 이끄는 G2(주요 2개국)의 '뒤끝 공방'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미국 국무부는 19일(현지시간) 'APEC 성명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언론성명을 내고 "미국은 역내 자유·공정 무역을 진흥하고 불공정 무역관행과 싸우는 데 동의하면서 APEC 성명 초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전면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돼 있었다"라고 밝혔다.
국무부는 그러면서 "모든 국가가 저마다의 수사(修辭)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입장을 지지할 수 없었던 것은 불행하다"고 지적했다.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성명 초안에 포함된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라는 문구에 강력히 반대했던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무부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방들과 함께 일하면서 디지털 무역과 서비스 무역 경쟁력, 구조개혁, 무역흑자, 여성의 경제참여를 포함한 우선순위 과제들을 진전시켰다"고 평가하고 "이 같은 분야는 미래 성장의 핵심 추진체인 모든 APEC 회원국들에 긴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헤더 나워트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국무부는 "우리는 역내 어디에서건 불공정 무역과 싸우는데 헌신하고 있다"며 "APEC은 역내 프리미엄 경제포럼으로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호혜적인 무역의 이상을 계속 진전시켜 운동장을 평평히 하고 모든 근로자와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무부는 이어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APEC에 건설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파푸아뉴기니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은 공동성명 초안을 마련했으나,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에 관한 미중 간 이견으로 성명 채택에 실패했다.
중국이 성명 초안에 담긴 '우리는 모든 불공정한 무역관행 등을 포함해 보호무역주의와 싸우는 데 동의했다'(We agreed to fight protectionism including all unfair trade practices)는 문구에 강력한 불만을 제기하며 수정을 요구했으나, 미국을 포함한 나머지 국가는 이를 포함하길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명 채택이 불발되자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APEC 구성원들은 모두 평등하고 상호 존중의 기초 위에 만장일치를 통해 결정한다"면서 "중국은 이번 회의에 성실하게 임했고 중국의 발언은 누군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 달리 미국은 매우 흥분하고 화가 난 상태에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다"면서 "미국 측의 발언은 이견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만들고, 평화로운 회의 분위기를 망쳤다"고 비판하고 "이런 이유로 구성원들은 공동인식을 달성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이날 사평(社評)에서 "APEC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미국 우선주의가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가세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APEC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이달 말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양국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류웨이동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무역전쟁은 미·중 양국에 모두 피해를 주지만, 중국이 더 큰 압력을 받고 있다"며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 협상팀과 정책 결정자는 더욱 큰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방 강대국은 미·중 사이에서 어느 편도 분명하게 지지하지 않지만,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조치를 암묵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며 "중국은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제임스 플로이드 다운스 홍콩중문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앞으로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국제무대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는 두 강대국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CMP에 따르면 APEC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이 끝난 후 중국 대표단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연설을 듣지도 않고 자리를 뜨는 등 극도로 냉랭한 관계가 연출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 등에서 미국 고위 당국자의 강경 발언도 이어졌다.
전날 홍콩을 찾은 패트릭 머피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은 "미국이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에 관해 수십 년 동안 고수한 원칙을 중국이 최근 뒤흔들고 있다"며 "이는 긴장을 고조시키고 이 지역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은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높은 수준의 외교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나,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서는 중국에 양보할 수 없다"며 "(중국이 남중국해를) 군사화하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화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인공섬에 군사시설을 세우고 비행훈련 등을 하며 이 해역을 실질적으로 점유한다는 전략을 펴지만, 미국은 군함 등을 동원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며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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