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폴, 러시아 '반체제 인사' 탄압기구로 악용되나

입력 2018-11-20 11:44  

인터폴, 러시아 '반체제 인사' 탄압기구로 악용되나
새 인터폴 총재 선거 앞두고 서방 언론 우려 목소리
21일 두바이 총회서 선출…푸틴 측근 당선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등 반(反)정부 활동을 펼치는 국내외 인사를 탄압하는 도구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한층 악용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인터폴 총재 선거를 코앞에 두고 나오고 있다.
인터폴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192개 회원국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개최하는 제87차 연차총회 마지막 날인 21일 새 수장을 뽑는다.
그간 인터폴을 이끌어온 중국 출신 멍훙웨이(孟宏偉) 총재가 지난 10월 부패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된 뒤 사임했기 때문이다. 멍 총재 사임 후에 인터폴은 한국인인 김종양 인터폴 집행위원회 부총재가 대행 체제로 이끌고 있다.
새 인터폴 총재 선거에서는 러시아 출신으로 푸틴의 측근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프로코프추크 부총재가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올라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검찰은 지난 19일 헤지펀드인 '허미티지 캐피털'의 최고경영자였던 영국 국적의 윌리엄 브라우더가 국제 범죄조직을 조직하고 자신의 친구이자 고문 변호사였던 세르게이 마그니츠키를 독살했을 것이라는 혐의를 새롭게 발표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넷판이 20일 보도했다.



그러나 브라우더는 러시아 검찰의 이번 혐의 제기에 대해 "(지난 3월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미수 사건에 개입한 것이 드러난) 푸틴 대통령의 악몽 같은 반응이 마그니츠키 독살 등 4건의 살인 혐의를 나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라고 즉각적으로 반박했다.
1936년과 1940년 미국 대선에 출마했던 얼 브라우더의 손자이기도 한 브라우더는 한때 수십억 달러를 굴리는 허미티지 캐피털을 운영하면서 러시아 최대의 외국인 투자자로서 입지를 굳혀 푸틴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러시아 고위관리가 연루된 거액의 탈세 의혹 등을 제기한 마그니츠키가 러시아 당국에 체포된 뒤 이듬해인 2009년 11월 의문의 죽임을 당하자 러시아 수사당국의 고문 때문에 죽었다고 비난하며 푸틴 정권과 날카롭게 대치해 왔다.
2005년 러시아에서 추방당한 뒤 영국 시민권을 얻어 런던에서 머물고 있는 브라우더는 지난 3월 '적색 수배령(Red Notice)'이라는 책을 출간, 자신의 추방과 마그니츠키 죽음의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 영향으로 미국이 마그니츠키의 죽음에 연관된 러시아인들의 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토록 하는 '마그니츠키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가디언은 러시아 검찰이 브라우더의 새로운 범죄 혐의를 발표한 것을 두고 이번 인터폴 총재 선거와 연관을 지어 분석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등 일부 언론이 최근 예상한 대로 러시아 내무 관료 출신인 프로코프추크 부총재가 인터폴 총재가 될 경우 러시아 당국이 인터폴의 적색수배 조치를 악용해 반정부 인사들을 상대로 한 탄압에 나설 것으로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반 푸틴'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는 푸틴 정부는 인터폴 수배 카드를 종종 악용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러시아가 인터폴 적색수배를 정적 제거에 활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푸틴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에 대한 인터폴의 적색 수배령을 종종 활용했다.
올해 초 브라우더가 스페인 당국에 구금됐다가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와 지지자들의 탄원에 힘입어 풀려났는데, 구금 배경에는 러시아 당국의 요청에 따른 인터폴의 수배 조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구금영장을 발부하지 않는 인터폴은 192개 회원국 간의 사법공조를 관장한다. 회원국은 다른 회원국에 특정인 수배령을 통보할 수 있다. 이는 한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피하려고 다른 나라로 도주하는 경우에 유용하다. 현지 법 집행 당국은 자국의 법 체계에 따라 회원국의 수배령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한다.
문제는 '범죄'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회원국별로 다르다는 점이다. 반정부활동이나 통상적인 언론 활동의 경우 서방 민주국가에서는 보호받지만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범죄가 될 수 있다. 인터폴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또는 인종적' 성격의 사안에 대한 간여를 금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브라우더는 지난 18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인터폴 총회 사진을 올리고 "푸틴이 앞으로 가장 대담한 작전을 시도할 곳"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인터폴을 접수하면 지구촌 모든 곳으로 범죄의 영역(촉수)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저명한 야권 정치인인 알렉세이 나발니도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러시아 당국의 정치적 박해에 기반을 둔 인터폴의 악용으로 고통받아 왔다. 러시아 대통령이 그런 위법 사례를 줄이는 데 기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푸틴 정권 체제에서의 러시아 출신 후보가 인터폴 수장이 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한편 가디언은 러시아 검찰이 이번에 브라우더의 새로운 혐의를 공개한 것은 러시아 당국이 취해온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행위의 가장 최근 사례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브라우더에 대해 2013년에도 인터폴을 통한 적색수배를 추진했다가 인터폴의 거부로 무산된 적이 있다고 한다. 또 러시아 법원은 브라우더와 공모해 탈세한 혐의 등으로 사후 기소된 마그니츠키에 대해 유죄로 판결하고 브라우더에게는 징역형을 선고했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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