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우선주의는 개인 어젠다 아닌 중장기 국가정책"

입력 2018-11-21 14:59  

"미국우선주의는 개인 어젠다 아닌 중장기 국가정책"
신간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美정부 공식문서 원문으로 보는 '아메리카 퍼스트'…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불러왔다.
이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에서 진실로 여기는 명제다. 언론과 일부 학계 등을 통해 비판 없이 퍼진 이런 논리를 맹신해도 되는 걸까. 국내 언론과 학계, 외교 전문가 등은 이미 트럼프의 낙선을 기정사실처럼 예측한 과오도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 박행웅·박동철 씨가 펴낸 신간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이런 명제가 틀렸다고 지적한다. 혈맹이라 부르지만 사실 우리는 미국의 실체를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 운용 시스템이 가장 잘 확립된 나라로 평가받는다. 개인 한 명이 시스템의 큰 틀을 흔들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 행정부만 봐도 주요 대외 정책을 결정하기 전 오랜 연구와 세밀한 정세 분석을 진행한 뒤에 반드시 '중장기 계획'을 보고서 형태로 공개한다. 그리고 급변 사태가 없는 한 중장기 계획을 한 치 어긋남 없이 이행한다. 이른바 '예측 가능한 시스템'인 것이다.
예컨대 중국과의 무역 전쟁과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무력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중국이 미워져서 시작한 게 아니다. 미국의 주요 대외 정책은 즉흥적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국무부 논평은 어떤 상황에서든 소름 끼칠 만큼 차분하고 냉정하다.
다만 이러한 중장기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사항은 들어가지 않는다.
'전략은 예측할 수 있게, 작전은 예측할 수 없게'가 미국 정부의 기본 모토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에는 초강대국 미국이 제시하는 중장기 전략을 다른 나라들이 미리 이해하고 맞춤 정책을 수립할 수 있게 하되, 미국 안보와 이익에 도전하는 나라는 언제든 '예측 불가한 작전'을 과감히 이행해 응징하겠다는 일관된 국가 철학이 깔렸다는 것이다.
소련 사분오열과 동유럽 분리 전략, 일본의 경제적 도전을 응징한 '플라자 합의', 이라크전, 그라나다 침공 등 현대사를 보면 실제로 미국의 이런 원칙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혼란스러운 북미 관계와 비핵화 문제, 미·중 관계 등을 예측할 때 가장 객관적이고 좋은 방법은 바로 미국의 중장기 전략 보고서를 직접 읽어보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모범적이다. 어설픈 전망이나 편향된 분석을 최대한 배제하고 작년 말부터 발표된 미국의 중요 전략 문건 6편의 원문을 편역해 싣고 해제를 넣었다.
4년마다 나오는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NSS)', '2018 미국의 국가방위 전략', '대통령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8년 주기로 나오는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대통령의 2018년 무역정책 어젠다',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우리 말로 자세히 읽어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 '미국 우선주의'의 함의를 밝힌 대목이다.
책에 따르면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레토릭이긴 하지만, 처음엔 실제로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적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뒤에 승인한 보고서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미군 철수와 같은 고립주의가 아니라 안보이익을 공유하는 동맹국들이 경제력에 상응해 방위 비용을 공평하게 부담함으로써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막아달라는 '호혜주의'로 전환한다.
무역정책 역시 보호무역이 아닌 '호혜적 자유무역'을 주창한다. 전임 행정부가 불리한 무역 협정을 체결해 손해를 본 만큼 공정하게 개정하고, 자유무역을 악용하는 중국 같은 나라들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해 자유무역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이런 원칙들을 직접 읽어보면 올해 들어 미국이 중국에 무역 제재를 잇달아 가하는 데 이어 환율 카드를 빼 들 조짐을 보이고, 일대일로를 와해하려 시도하면서 중국 인권 문제까지 부각하려는 행보를 본격화한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책은 "국가정책으로서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큰 틀에서는 계승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트럼프라는 인간 캐릭터에 가려 '국가정책으로서 미국 우선주의'의 본질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국가 운용 시스템은 개인의 캐릭터보다 강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행웅은 코트라, 박동철은 외교관 출신이다. 한울엠플러스 펴냄. 280쪽. 1만9천500원.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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