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측 "대자보 허용, 성경험 편견 안돼", 반대 측 "비교육적 영향"
찬반 공방 치열해 연내 처리 어려울 듯…교육청, 공청회 더 열어 의견수렴
(창원=연합뉴스) 김선경 기자 = 경남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을 둔 찬반 공방이 치열하다.
진보와 보수·종교단체를 두 축으로 한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자 도교육청은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당초 계획보다 더 열기로 최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조례안을 연내 도의회에 제출해 처리하려던 도교육청 목표는 사실상 해를 넘기게 됐다.
과거 수차례 시도됐다가 좌절된 경남학생인권조례가 이번에는 명문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훈육·통제 등 학교문화 개선…성 소수자 학생 권리 보장 등
경남학생인권조례의 정식 명칭은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경상남도 교육조례(안)'다.
헌법과 각종 법률이 학생 인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교육현장에서는 학생이 여전히 훈육과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만큼 학교문화를 개선하자는 것이 조례안 취지다.
조례안은 큰 틀에서는 앞서 경기·서울 등에서 제정한 조례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11조 3항)거나 학생이 두발 등 용모와 복장을 결정할 수 있도록(9조) 했다.
또 사상·양심·종교의 자유(7조)를 부여하고 성 소수자 학생의 권리를 보장(30조)하도록 명시했다.
학생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할 권리를 명시하는 등 자치참여권도 보장(20조)했다.
조례안은 이런 내용에 더해 최근 교육현장에서 실제 불거진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기도 했다.
학생이 본인 주장을 담은 게시물을 학내에서 허용된 공간에 붙일 수 있도록(8조 3항) 규정했다.
학교는 특정 공간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게재공간을 세 곳 이상 설치하도록 했다.
일선 학교에서 대자보 게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게시물을 붙이려는 학생과 이를 막으려는 학교 사이에 논란이 되풀이된 데 따른 조처다.
교직원이 성폭력 피해 또는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에 대해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17조 2항)고도 명시했다.
이 조항은 각 학교에서 인권교육 실태조사를 했을 때 학생들 불만으로 접수된 내용을 반영한 것이라고 도교육청은 설명했다.
◇ "인권 감수성 향상" vs "비교육적 영향"…찬반 공방 치열
해당 조례안이 지난 9월 공개된 이후 찬반 공방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경남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전교조 경남지부, 여성단체 등 진보성향 단체는 "마땅히 제정해야 한다"며 "차이가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학교현장에서부터 서로를 존중하는 인권교육이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 인권 감수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수성향 시민·종교단체들은 극구 반대를 고수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조례안에 담긴 일부 조항이 학교현장에서 혼란을 초래하는 등 비교육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례안에 따라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있게 되고, 두발이나 복장을 자유롭게 하면 학생 지도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왔다.
학생 인권만 중시하면 교권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반대 측에서는 특히 사상의 자유, 성관계 경험 학생에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조항 등을 두고서는 "김일성 찬양 조례", "음란 세뇌 교육"이라는 등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성적 타락을 초래하고 성관계를 조장한다"라거나 "초등학생이 성관계로 임신해도 인권이니 내버려 둬야 하는가"라는 과격한 주장도 쏟아내고 있다.
교육당국은 이를 과도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조례안은 학생 인권과 권리의 본질은 침해할 수는 없도록 규정했지만, 필요할 경우 학칙에 의해 법령 범위에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용모·복장·휴대전화 소지 등과 관련한 문제를 학교 구성원 의견을 모아 결정하도록 여지를 남겨뒀다는 의미다.
또 학생이 교직원 인권을 침해했을 때는 적법 절차에 따라 책임지도록 명시했다.
이는 "학생 인권과 교권은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다. 대체재라고 하면 학생 인권도 교권도 주장할 수 없다. 조례는 양쪽을 윈윈하도록 할 것"이라는 박종훈 교육감 설명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도교육청은 성 관련 조항에 대해서도 차별 금지를 명문화한 것일 뿐 반대 측 주장은 과도하거나 왜곡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 '10년 수난' 극복하고 이번엔 빛 볼까…험로 예고
이처럼 찬반 대립이 극심한 탓에 경남에서 유독 수난의 역사가 길었던 학생인권조례가 이번에는 제정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남교육연대 등이 2008년부터 조례 제정을 촉구해왔지만 결실을 보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2012년에는 도민 3만7천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주민 발의로 조례 제정을 추진했지만, 도의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박 교육감은 다시 조례안을 꺼내 들었고, 조례 제정 움직임이 일어난 지 10년째인 올해 지방선거로 재선에 당선되자 본격 추진 방침을 밝혔다. 때마침 도의회 정치지형이 바뀌어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점은 조례 통과에 긍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지난 주말 창원 도심에서 이례적으로 대규모 반대 집회가 열리는 등 반발이 확산하고 있어 조례 제정을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도교육청은 지난 20일 창원에서 연 공청회가 찬반 측 극심한 대립으로 사실상 파행을 겪자 일단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권역별로 더 열기로 했다.
향후 공청회가 창원 때와는 달리 물리적 충돌 없이 건설적으로 진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면에서 결국 조례 제정을 두고 진보·보 수간 '감정싸움'만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집회 등 현장에서 "인권교육 명목으로 왜곡된 사상을 주입해 본인들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라는 등 편향된 구호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인권 보장이라는 본질보다 '해석'을 둘러싼 상반된 주장만 거듭하며 교육계 다른 현안들이 공전을 거듭하는 것은 아닌지 부작용도 예상된다.
조례안이 사실상 해를 넘겨 처리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이해 당사자들이 소모적 공방만 거듭하지 않고 의견을 모을 수 있을지는 교육 당국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k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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