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새 두번째 대법 강제노동 배상판결…한일관계 '시계제로'(종합)

입력 2018-11-29 17:31  

한달새 두번째 대법 강제노동 배상판결…한일관계 '시계제로'(종합)
한일, 이례적 대사초치 공방…日 "결코 수용 불가"·韓 "매우 유감"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으로 한일관계 악화일로…해법 마련 쉽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한 달 만에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또 나오면서 그렇지 않아도 얼어붙은 한일관계의 경색이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의 첫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지난 21일 화해치유재단 해산 공식화로 악화 일로인 한일관계에 부담이 더해진 것이다. 한일 외교부(일본은 외무성)가 같은 날(29일) 상대국 대사를 각각 초치한 이례적 상황에서 보듯 양국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며, 갈등 수위는 고조되는 양상이다.
대법원이 29일 강제징용 피해자 6명과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및 유족 등 5명이 각각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모두 일본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예견된 일이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달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청구권협정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피해자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됐다.
일본은 이 판결 이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한국 사법부가 이를 무력화하고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여왔는데, 이번 판결들로 한일관계의 파열음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한일 외교당국은 이날 판결 뒤 상대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날선 공방을 벌였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판결 직후 담화를 내고 "이번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反)하고, 일본 기업에 대해 한층 부당한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며 "매우 유감이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구축해 온 양국의 우호 협력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집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외무성의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항의했다.


우리 정부도 즉각 대응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우리 사법부 판결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자제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더 나아가 이날 오후 나가미네 주한일본대사를 청사로 불러 이번 판결 등에 대한 일본 측의 과도한 반응에 항의했다.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가급적 반응을 자제해 왔지만, 일본측 메시지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차츰 대응 수위를 끌어올렸다.
고노 외무상이 "어떤 나라도 한국 정부와 일하기 어려울 것"(5일), "폭거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6일) 등의 거친 말을 쏟아내자, 이낙연 총리가 지난 7일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발언은 타당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못하다"고 꼬집었다.
최근에는 고노 외상이 강경화 장관의 방일 가능성과 관련, 지난 26일 "(강제징용 배상 판결, 위안부 재단 해산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일본에 오셔도 곤란하다"고 말했다고 NHK가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27일 '발언 내용이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외교 관계를 관리하는 외무대신으로서 비외교적인, 또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하는 등 공방이 이어졌다.



정부는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는 그것대로 지혜롭게 해결하되 경제와 안보 등 분야의 협력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이른바 '투트랙' 기조로 한일관계를 관리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노규덕 대변인은 정부는 동 사안과는 별개로 한일관계의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민관 공동의 숙의 과정을 거쳐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낙연 총리가 지난 13일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 등 한일관계 전문가 10여명과 오찬을 함께 하며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정부는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일본기업들이 배상 판결을 이행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대리 보상을 하거나 독일이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실행한 '기억·미래·책임 재단'과 같은 형태의 재단을 설립하는 방안 등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기된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사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정치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독일 방식을 염두에 두고 한일 양국이 출연하는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도 "우리 정부와 65년 청구권협정에 따라 혜택을 본 우리 기업, 일본기업이 함께 돈을 내는 방식이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기업에 내려진 배상 책임을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해결을 도모한다면 피해자나 여론의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도 있다.
진 센터장은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관건이며 다른 피해자들에 있어서는 어떻게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면서 "계속 일본과 티격태격할 수는 없고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transi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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